[과학 핫이슈]기초연구 판 바꾸면 한국도 노벨상 탈까

올해 노벨상 시즌이 끝났다. 기대가 낮긴 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한국인 수상자는 없었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노벨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 분야에서 연거푸 수상자를 배출했다. 올해까지 노벨 과학상 분야에서만 21명 수상자가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 노벨상 시즌이 지나가면 한국인 수상자가 없는 것을 두고 비판론이 쏟아졌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가 기초연구를 혁신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25년까지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세계 톱 클래스 연구자를 1000명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제시했다. 과연 기초연구 판을 바꾸면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투자 많고 양적 성과도 많다는데

과학기술 분야에서 강조되는 것은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다. 투자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4.15%로 세계 1위다.

양적인 성과도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전체 SCI 논문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난해 총 5만1588편으로 세계 10위에 진입했다. ‘네이처’ ‘사이언스’ ‘셀’ 세계 3대 저널 게재 논문 수도 54편으로 세계 18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투자와 성과 간에 불균형이 있다는 데 있다. GDP 대비 R&D 투자는 1위지만 R&D 대비 기술수출 비중은 27위다. 특허 출원·등록은 4위인데 반해 기술사업화(지식파급효과)는 43위에 그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혁신정책보고서는 우리나라 R&D 문제점으로 제대로 된 R&D 기획 부재, 논문-특허 등 숫자를 세는 평가 지양, 실험실만 맴도는 연구성과 한계 등을 지적했다.

R&D 투자 비중 1위라는데 안주하는 것도 문제다. 이미 R&D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는 착시에 빠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내년 정부 R&D 예산 증가율은 물가인상률보다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절대경제규모에서 선진국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R&D 투자 액수 차이가 크다. 기초연구 예산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9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물론 정부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과학에만 무한정 투자하기도 어렵다. 결국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전략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동안의 성과 역시 양적인 측면에 치우친 경향이 크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주기 논문당 피인용수는 4.55회로 32위에 그쳤다. 논문의 양적 지표가 세계 10위권까지 올라간 것에 비하며 질적인 수준은 여전히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초연구 역사가 짧아 누적된 지식이 선진국에 비해 약하다는 점도 한계다. 1991년 이후 누적 R&D 투자액은 5975억달러로 중국의 3분의 1, 미국의 11분의 1 수준이다. 누적 SCI 논문 수도 44만2702편으로 중국의 3분의 1, 미국의 14분의 1에 불과하다.

질적 수준이 높은 선도 연구가 부족하고 세계 최초·최고 성과 창출이 미흡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질적 수준을 높이지 못하면 앞으로도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낮다.

◇기획부터 평가까지 기초연구 판 바꾼다

정부는 지난 22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열고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기초연구 발전방안’을 보고했다. 기초연구 지원에 전략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보고했다. 골자는 기획부터 평가까지 기초연구 지원 전 과정을 혁신해 기초연구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초연구 발전방안 핵심은 △연구자 맞춤형 연구지원체계 확립 △신진 인력 양성 △평가체계 혁신 △과학기술-사회 연계 강화다.

그동안 우수한 중견 연구자 수가 크게 증가했지만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제안해 수행하는 연구자 중심 기초연구비는 부족했다. 연구자의 높아진 연구 수준과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연구자 중심형 기초연구비를 전체 기초연구 예산 30% 수준까지 높이기로 했다.

최근 10년간 노벨상 수상자 73명 중 48명(65.8%)이 20~30대에 수행한 연구업적으로 수상한 것에 비춰 기초연구를 이끌어갈 신진 연구자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선도형 기초연구가 가능하도록 평가체계도 바꾼다. 지금까지는 모든 연구 분야 과제평가에서 평가항목과 비중 등이 일률적으로 적용됐다. 이러다보니 선도형 연구가 어려웠고 연구자 연구역량에 기반을 둔 기초연구 평가를 하기도 어려웠다. 틀에 박힌 획일적 평가시스템으로 인해 양적 지표를 위한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데이터 분석과 전문가 평가를 결합한 새로운 평가체계를 만들어 선도형 연구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연구 분야별로 맞춤형 평가를 도입하고 평가자와 평가방법도 다양화한다. 취약·소외 분야에 대해 유행을 따르는 연구가 아니라 평생 한 분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한 우물 파기 연구’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이 같은 지원을 통해 10년 뒤인 2025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 연구자 1000명을 양성하고 세계 1등 기술 10개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과학계도 정부의 기초연구 강화 방안을 환영하지만 여전히 목표를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도 표했다.

과학계 한 교수는 “연구자 맞춤형 지원을 하고 평가체계를 바꾸겠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면서도 “10년 만에 1000명의 톱 클래스 연구자를 양성하겠다는 등 비현실적인 목표를 지향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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