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노예가 될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

“많게는 하루에 서너 개 청년희망펀드 가입 보도자료를 뿌리고 있습니다. 홍보대사만 바뀔 뿐 내용은 같습니다. 사진만 나오게 기사 좀 부탁드립니다.”

은행권 홍보관계자 말이다. 최근 금융가에 불고 있는 청년희망펀드 홍보 경쟁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년희망펀드 1호 가입 여파가 금융권 홍보경쟁으로 번졌다.

희망펀드가 지닌 본래 의미보다 유명인사가 가입했는지, 그야말로 홍보대사를 앞세운 실적 경쟁으로 변질되는 분위기다.

연예인은 물론이고 유명 정치인, 교수, 스포츠인까지 ‘청년희망펀드 가입’, 이로써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비슷한 메시지다. 우리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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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금융권은 정치권에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청년희망펀드를 활용하고 있다.

전통시장이나 지방에 위치한 지점에 찾아가 홍보대사가 가입증서를 들고 똑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내용도 형태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다.

많게는 하루 평균 10건이 넘게 똑같은 자료를 받아보는 기자도 당황스럽다.

과연 이들 금융사가 현재 우리나라 청년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체감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자발적 의사에 따른 순수 기부로 추진돼야 할 청년희망펀드 취지가 정부 강제화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초기 할당량을 강제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가운데 사회 유명인사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금융사의 과열경쟁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내를 넘어 세계가 청년 실업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금융권 인력 창출과 실질적인 지원책이 선행돼야 할 때다. 청년희망펀드를 정책적 소구로 악용하는 ‘노예’가 되기보다는 청년실업을 함께 해소할 수 있는 주인정신이 필요한 때다.

그래야만 청년희망펀드 본연의 희망이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