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강조하는 A기업이 있다. 사업 환경이 악화됐고 기업 실적은 바닥을 쳤다는 사실을 조직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한다. 위기에 처했지만 인식하지 못 하는 B기업도 있다. 상황을 모르니 조직원을 자극할 일도 없다. 두 기업 중 성장 가능한 기업은 어디일까.
상당수는 쉽게 A기업을 꼽을 것이다. 위기를 인식한 조직원이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A기업 조직원은 위기를 ‘진짜 위기’로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A기업과 B기업은 둘 다 성장이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일상화된 위기는 진짜 위기가 아니다. 이는 ‘감각의 순응’과 ‘역치’로 설명할 수 있다. 역치는 자극에 특정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최소 자극 세기다. 같은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역치가 올라 더 큰 자극을 주기 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상황을 감각의 순응이라고 부른다. A기업처럼 감각의 순응이 발생한 조직은 필연적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이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는 사상 최악 수준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 연속 0%대에 머물러 디플레이션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수출입 부진은 1월부터 7개월째 이어졌다.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돌파해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중국 경제 둔화 등 대외리스크도 피해갈 수 없다.
정부는 연일 경제 위기를 강조한다. 지난해부터 한 달이 멀다하고 대응책을 내놨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주요 경제지표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민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정부는 애가 닳지만 “경제를 살려보자”는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기대하기 힘들다.
정부의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기업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당근과 채찍도 더 필요하다.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탁상공론으로 정책을 만드는 전략은 더 이상 효과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