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소비자가 선택하는 주유소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알뜰주유소에 이어 이번엔 ‘안심(安心) 주유소’를 내걸었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소비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품질관리 비용 90%를 정부가 세금으로 보조해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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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기간산업 보호·육성이라는 존재 이유를 외면한 산업부 기름값 정책이 시장과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알뜰주유소가 시장에서 기준 가격을 제시한다는 산업부 주장은 믿기 어렵다. 과포화 상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에서 주유소별 기름값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 모든 소비자가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찾는 것도 아니다. 가격보다 서비스가 착한 주유소를 찾는 소비자도 많다. 셀프 주유소를 마다하고 애써 비싼 일반 주유소를 찾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실제로 셀프 알뜰주유소 기름값은 소비자가 받아야 할 서비스를 포기한 대가일 뿐이다. 알뜰주유소에서 퇴출된 적지 않은 수의 주유원 복지에 필요한 세금은 결국 운전자 몫으로 돌아온다.

지난 정부 정책인 알뜰주유소가 중앙부처 예산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1000개가 넘는 알뜰주유소에 시설비 명목으로 쏟아부은 세금만 해도 300억원을 넘는다. 지자체 세수 확보에도 부담을 줬다.

농협이 500개 알뜰주유소 사업으로 재정적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농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운전자 주머니에 넣어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도로공사가 200여개 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전환시켜 고속도로 이용자에게 연료 선택권을 박탈해버린 것도 문제다. 알뜰주유소 때문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기름을 넣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는 소비자도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석유공사 역할에도 의심이 든다. 나프타 수출에 힘쓰던 민간 기업을 내수시장으로 끌어들여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알뜰주유소 파장이 석유화학산업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주유소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석유공사를 제소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알뜰주유소가 공정거래 제도까지 위협하는 문제기 때문이다. 기업 상표권은 ‘상표권’에 따라 법적·제도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 공정위도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상표권 보호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심지어 외국기업의 상표권도 법·제도적으로 보호를 해주는 것이 국제 관행이다. 관세청, 공정위, 검·경찰이 나서 외국 명품 짝퉁을 단속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정유사가 자신의 상표권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정유사에 상표권 포기를 강요하는 것만으로도 알뜰주유소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 정부의 알뜰주유소 관리도 의문이다. 가짜 유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휘발유·경유에도 엄연하게 품질이 존재한다. 품질이 서로 다른 제품을 마구 뒤섞어놓은 연료를 무작정 믿고 쓰라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을 오히려 제한한다.

새로 나온 안심주유소도 기대에 못 미친다. 품질 관리에 동원될 석유관리원 운영비도 사실은 소비자와 정유사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운전자가 부담해야 할 돈으로 운전자에게 생색을 내는 것이다. 소비자와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을 흔들고 있는 알뜰주유소나 안심주유소는 빠른 시간 안에 원점 재검토돼야 한다. 연료 소비 절약과 합리적 소비를 위해 불합리하면서도 과도한 유류세를 손보는 일이 훨씬 더 시급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탄소문화원장) duckhwa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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