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 와인스토리 (3)
14세기 초 프랑스 보르도(Bordeaux)의 와인 수출은 그 양이 연간 8300만 리터를 넘을 정도로 활발했다. 당시에는 주로 나무통에 담겨 거래됐지만 이해하기 쉽게 750ml 병으로 환산하자면 연간 1억 병이 넘는 양이다. 이 시기는 보르도시 서쪽 메독(Médoc) 지역이 개발되기 전이어서 (메독은 17세기 말에 와서야 와인산지로 개발된 곳이다) 와인은 주로 보르도 시 남쪽 그라브(Graves)나 북쪽 엉트르 두 메르(Entre Deux Mers)에서 생산됐다. 이 두 지역은 지금도 활발히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다.
당시엔 보르도가 잉글랜드(England) 땅이던 시절이어서 보르도 와인 수출량의 80%를 잉글랜드가 사갔다. 잉글랜드 와인 수입상들은 보르도를 직접 방문해 와인을 고르고 사갔는데, 워낙 큰 손이다 보니 이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보르도 와인상에게 어떤 스타일의 와인을 어떤 가격대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15세기 중반 백년전쟁이 끝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전쟁에서 패해 보르도를 잃은 잉글랜드는 보르도 와인에 높은 관세를 매겼고, 잉글랜드 상인들은 보르도의 대안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새로운 와인 산지를 개척했다. 보르도는 큰 고객을 잃었을 뿐 아니라 경쟁자까지 생긴 셈이었다. 게다가 당시 클라레(Claret)라고 불리던 보르도 와인의 품질은 저가에 대량으로 팔리던 벌크 와인(bulk wine)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르도 와인은 잉글랜드 외에 다른 나라로 수출길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보르도 와인은 약 200년간 긴 암흑기를 보내다 17세기 중반에 와서야 고급화의 길로 서서히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 길을 주도한 사람이 아르노 드 퐁탁(Arnaud III de Pontac)으로, 보르도 지방의회 초대 의장을 지낸 귀족이었다.
퐁탁은 당시 네고시앙(negociant)들이 장악하던 와인 물류 방식에 불만이 있었다. 네고시앙은 보르도의 와인상으로 여러 와이너리로부터 와인을 오크통째로 사들여 숙성시킨 뒤 블렌딩 해서 자기들 상표를 붙여 팔았다. 퐁탁의 포도밭은 보르도 시 바로 남쪽 페삭(Pessac)이라는 마을에 있었는데, 퐁탁은 자기 밭의 테루아르가 특별하며 그곳에서 생산된 와인 맛은 남다르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수한 자기 와인이 와인상에게 팔려가서 싸구려 와인과 마구 섞이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퐁탁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바로 자기 와인에 다른 와인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을 매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네고시앙들은 퐁탁의 와인을 다른 와인과 섞지 않고 별도로 비싼 값에 팔기 시작했다.
이 방식이 효과를 거두자 퐁탁은 1660년부터 아예 자기 와인에 고유한 이름을 붙여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이름이 바로 오브리옹(Haut-Brion), 지금 보르도 5대 명품 와인 중 하나다. 그는 와인을 직접 판매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들을 영국으로 보내 오브리옹 와인을 독점 판매하는 폰탁스 헤드(Pontack’s Head)라는 주점도 오픈했다. 이곳은 당시 영국의 유명인사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던 스위프트(Jonathan Swift) 등이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퐁탁은 훌륭한 와인 제조가라기보다는 뛰어난 마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테루아르(terroir)를 이해한 사람이었기에 자기 와인의 가치를 알아봤고,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자기 와인에 고유성을 부여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보르도에 샤토(chateau)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후 메독이 개발되면서 그곳에 새롭게 자리 잡은 와이너리들은 오브리옹을 모델로 삼아 보르도에 샤토 와인 시대를 정착시켰다. 그들이 바로 메독의 명품 와인, 라피트(Lafite), 라투르(Latour), 마고(Margaux), 무통(Mouton)이다.
1855년 프랑스는 파리 엑스포를 개최했다. 프랑스는 전 세계 방문객들에게 메독의 샤토들을 쉽게 알리고자 샤토마다 등급을 매긴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이때 오브리옹은 메독이 아닌 페삭에 위치한 와이너리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1등급 와이너리로 이름을 올렸다. 퐁탁 이후 긴 세월 동안 오브리옹의 소유주는 몇 번 바뀌었고, 1935년 미국의 자본가인 클래런스 딜론(Clarence Dillon)이 오브리옹을 구입해 지금까지 딜론 가문이 운영하고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을 블렌딩한 오브리옹의 레드 와인은 블랙커런트와 같은 검은 과일 그리고 흙, 연기, 담배 향이 어우러져 페삭 테루아르의 전형을 보여준다. 세미용(Semillon)과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섞인 오브리옹의 화이트는 오크 통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와인으로 부르고뉴(Bourgogne)산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 중 1등급인 그랑 크뤼(Grand Cru)에 버금가는 품질을 자랑한다.
오브리옹은 병당 100만 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결코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은 아니다. 하지만 보르도 와인의 고급화를 이끈 주역이니만큼 600년을 이어온 그들의 역사를 일생에 한 번쯤은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 회에는 메독이 개발된 배경과 역사 그리고 그곳 샤토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자소개/ 김상미
1990년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통신 1세대로 20여년간 인터넷과 통신 회사에 근무하였다. 음악서비스 멜론의 서비스기획팀장을 마지막으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유럽에서 근무하며 와인을 좀 더 쉽게 접하게 되었다.
2012년 회사를 그만두고 와인에 올인, 영국 Oxford Brookes University의 Food, Wine & Culture 석사과정에 입학하였고 그녀가 쓴 ‘An Exploratory Study to Develop Korean Food and Wine Pairing Criteria (한국 음식과 와인의 조화)’는 석사논문으로는 이례적으로 2014 Global Alliance of Marketing & Management Associations (GAMMA) Conference 에서 소개 된 바 있다.
최근에는 영국 런던의 세계적인 교육기관인 Wine & Spirit Educational Trust (WSET)의 최고 등급인Diploma를 취득했다.
현재 주간동아에 와인 칼럼을 연재 중이며 KT&G 상상마당의 홍대 와 춘천 아카데미에서 와인을 가르치고 있다. 늘 한국인의 입맛과 음식에 맞는 대중적인 와인을 찾고 공유하는 일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