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연구생산성 향상을 위한 과제

몇 개월 전 한 언론에 ‘대한민국 R&D 역설’이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그런데 이 R&D 역설을 처음으로 제기한 유럽연합과 우리나라 역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걸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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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에서 R&D역설은 과학기술지식의 인프라는 튼튼한데 제품의 경쟁력은 일본과 미국에 뒤진다는 각성에서 기존의 지식 인프라를 활용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R&D역설은 연구개발에의 투자는 세계 정상 수준인데 비해 연구결과로 산출된 지식으로는 상업적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유럽은 축적된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반면 우리는 연구의 질적 성과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근대의 과학기술이 꽃 피기 시작한 18, 19세기를 쇄국과 식민지로 보내 제대로 된 과학기술을 기초에서부터 해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매우 관대한 연구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과학기술자가 선택하는 연구개발 주제도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따라잡는데 중점을 둬 왔다. 다시 말해 선진국의 연구 성과를 모니터링한 후 이를 복습해 보고 개량해 보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과제만을 연구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선진국 따라잡기 연구문화로 인해 연구개발투자의 성과는 괄목한 만한 양적성장을 이루었다.

과학기술인용색인(SCI) 논문수는 2008년 2만2258편에서 2012년 2만8613편으로 연평균 6.2%씩 증가하고 있지만 논문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피인용도는 4.23으로 세계 평균 5.86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연구개발에서는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올림픽 경기에 기록이 그만그만한 선수 100명을 내보내는 것보다 세계 신기록을 가진 선수 1명을 출전시키는 것이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연구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질적 성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연구개발 지원 시스템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과감히 전환하는 일이다. 정부도 이러한 시스템의 전환의 필요성을 인정해 연구실패 면책제도(Fail to Free)를 도입해 선도형 연구 과제를 선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예산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국민의 혈세라는 명분으로 지출에 대한 엄격함’을 내보이고 당장의 성과만을 바라는 정치적 압력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강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로 인해 실패를 학문적 권위가 실추된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감추려는 성향이 특히 강하다. 이러한 정치적 압력과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연구과제의 지원목표는 실패를 인정한다고 명시하면서도 평가기준은 빠른 성과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실제 선도형 연구과제가 지원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과제를 차근차근 시행해 연구과정에서 경험한 실수나 실패를 공개하고 이를 격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우선 연구현장에서 퇴직한 과학기술자들로 하여금 연구현장에서 경험한 실수나 실패 사례를 정기적으로 발표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연구과정에서의 실수나 실패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연구자가 혼자 암묵지로 갖고 있는 것을 명시적 지식으로 전환함으로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발생하는 연구재원을 절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과제의 평가에서 정략적 지표에서 정성적 지표에 중점을 둘 수 있도록 평가의 자율성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 정량적 지표는 과거의 성과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어 과학적 혁신에 필수적인 실패의 위험성이 있는 연구 과제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도전적 실패가 예산의 낭비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연구 창출의 밑거름이 된다는 인식하에 도전적 실패를 용인해 주는 사회분위기와 평가 시스템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문형철 대덕과학기술사회적협동조합 이사 tkmoon2@naver.com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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