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일본 국가정보화 수요를 파고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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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IT·정보화 위상은 확고하고도 높다. 2012년부터 3회 연속 세계 1위로 인정받은 대한민국 전자정부를 비롯해 교육·금융·의료 등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집에서 본인의 프린터로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해 각종 증명을 인쇄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중고생의 수험공부를 위해 국영 인터넷 수능강의를 열어주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에 또 있겠는가? 티머니 하나만 갖고 있으면 모든 노선의 전철이나 버스·택시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으며 환승할인도 받을 수 있고 편의점에서 물건도 구입할 수 있는 편리한 국가는 흔치 않을 터이다. 이곳 일본 매스컴에서도 한국의 선도적 정보화 사례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의 정보화는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최근 20년 동안 일본에서 정부·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IT 관련 컨설팅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 일본에 진출했을 때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 시스템 개발자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해 일본 기업으로부터의 수탁 개발 혹은 인력 파견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중앙정부, 지자체는 물론이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금융·건설·IT 관련 기업 등에 정보화 컨설팅을 제공하고, 주요한 시스템 구축에 주사업자로 참여하는 등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 컨설팅보고서의 상당 부분이 한국의 선진사례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임을 볼 때 대한민국 국가정보화는 눈부신 발전과 함께 한발 앞서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토록 훌륭한 정보화 사업들을 수행해 낸 한국의 IT 기업들이 일본에만 진출하면 왜 맥을 못 추는 걸까.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이 앞서가는 분야가 있다면 한국의 성공모델은 일본이 벤치마킹하려는 대상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정보산업시장 규모만 연간 수십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일본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SI 대기업들이 왜 기를 못 펴는 것일까. 또 한국의 국가정보화 전반을 떠받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중소 솔루션 업체들의 일본 진출 성공뉴스도 가물가물한 실정이다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일본 IT시장에 대한 기초지식이 너무나 부실하다는 것이다. 일본 IT기업들이 왜 한국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렸는지 일본 사회 각 분야의 정보화가 왜 한국보다 더딘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단순히 한국 제품이 일본제품 보다 싸고 좋으니 팔릴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본시장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에는 일본에서 유학한 사람이나 일본에 주재했던 사람이나 일본과의 사업교류 때문에 일본에 거주했던 이른바 일본 전문가가 많다.

문제는 일본 전문가라는 단어의 정의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년 전에 일본 총무성(우리나라로 치면 안전행정부) 산하 지방자치단체 국제화재단 서울사무소장으로부터 한국의 전자정부에 관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요청받았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나에게 굳이 한국전자정부에 관한 강의를 요청한 것에 의아심이 들어 그에게 되물었다. 서울사무소 일본직원들은 서울에 거주한 지 수년씩이나 되고 더군다나 한국 직원도 많이 있는데 굳이 내게 부탁을 하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되돌아온 답은 일본 직원들은 한국에서 행정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없어 한국의 전자정부가 어떻게 선진적인지 알 길이 없고 한국직원들은 일본에서 행정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양국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디에 살고 무엇을 했든지 간에 그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지 않으면 속사정을 알 리 없다. 우리나라 IT기업이 일본시장에 연착륙하려면 일본인의 시선으로 일본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보이고 왜 우리가 일본 진출에 고전을 했는지 문제가 보인다.

일본 정부는 내년까지 2년간 국민번호제도 도입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IT분야에 쏟아지는 예산만 4조엔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는 한국 주민등록번호 같은 번호를 일본 국민에게 부여하는 프로젝트다. 이 번호를 이용해 행정·금융·의료·복지 등 사회 각 분야의 정보화를 촉진하겠다는 뜻이다. 공공·민간 할 것 없이 사회 각 분야의 기업 및 기관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번호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거의 모든 기존 시스템을 재구축 또는 수정해야 하는 앞으로 수년간 동시에 수만명 규모의 투입이 필요한 메가뱅크 기간시스템 개발 작업과 여타 민간부문 신규시스템 구축수요가 잇따라 나오고 있어 일본 정보화 분야의 과수요로 인해 심각한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

근자에 만난 한국 IT분야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 수요부진으로 한결같이 힘들고 어렵다는 하소연뿐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어느 대기업 총수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한국 시장이 작다고 탓하지 말고 경쟁자가 많다고 위축되지 말고 세계로 눈을 돌리자. 국가 전 분야의 정보화추진 노하우를 갖고 가지고 있는 한국 IT기업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해 일본 국가정보화에 기여하고 매년 300억달러에 달하는 고질적 대일 무역적자까지 개선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일본 총무성 전자정부전문원) Yomutaku@e-corporation.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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