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이 흔들리니, 반도체 세상이 온 것 같다.”
4일 단행된 삼성전자 임원 인사에 대한 관계자 발언이다. 이날 인사에 대한 삼성전자 안팎의 반응은 ‘철저히 실적 반영’이다. 예상보다 승진자 수는 적었다. 이 때문에 ‘안타깝다’는 반응이 들린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만 해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인물이 이번에 안 됐다”고 전했다. 메모리사업부에서 승진자가 많이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순혈주의(공채 출신)가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삼성 한 관계자는 “한동안 무선사업부만 조명을 받아 타 사업부에서 아쉬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에 무선 이외의 타 사업부가 인정을 받음으로써 적정한 평가를 받았다는 반응이 들린다”고 전했다.
◇메모리 승진 돋보여
부품(DS)부문 메모리사업부는 회사 전체 승진 폭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승진자가 늘었다. 지난 1일 사장단 인사에서 전영현 부사장이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임원 인사에서도 탄력을 받았다.
새로운 상무 승진자와 여성 승진자도 다수 배출했다. 여성 승진자 중 한 명인 류수정 부장은 시스템아키텍처 전문가로서 저전력 고성능 GPU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해 상무로 발탁했다. 박진영 부장은 반도체 설비구매 전문가로 설비투자 비용을 줄이고 설비 사양을 표준화해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상무로 승진했다. 플래시메모리 개발 전문인 신유균 상무는 V낸드 플래시메모리 개발을 주도해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높인 성과를 인정받아 전무로 발탁했다.
◇해외 비중 강화 포석
삼성전자는 올해 큰 폭의 실적 악화를 겪었다. 이는 그대로 이번 사장단 및 임원 인사 대상 축소로 나타났다. 내년에는 실적 반등을 꾀해야 한다. 문제는 자금 여력이 올해 같지 않다는 점이다. 삼성 관계자는 “내년에 실적 반등을 위해 각 사업부가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며 “다만 올해와 달리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인사와 내주 예정돼 있는 조직개편과 보직 인사에서는 이 같은 고민이 반영될 것이란 분석이다. 부사장 조직이었던 글로벌마케팅실이 홍원표 사장이 이끄는 글로벌마케팅전략실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 해외 승진자가 많이 나온 것도 비슷한 취지로 파악된다. 2012년과 지난해에 이어 외국인 부사장 승진자(데이비드 스틸 북미총괄 기획홍보팀장)가 나온 것을 비롯해 해외 현지인력 가운데 장단단 중국본사 부총경리가 처음 여성 본사임원(상무)으로 선임됐다. 이밖에 에드윈 네덜란드법인 물류담당 VP, 트레비스 미국법인 모바일영업 VP, 위차이 태국법인 통신영업 VP 등이 상무로 승진했다.
◇IM 조직 크게 흔들 듯
지난해 삼성전자 조직개편은 카메라를 맡고 있는 디지털이미징사업부를 무선사업부로 통합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IT모바일(IM) 임원을 대폭 줄이며 조직 슬림화 의지를 확인했다. 4일 발표된 삼성전자 부사장 인사에 이름을 올린 21명 중 IM부문 승진자는 최경식 무선전략마케팅실 전무와 최윤호 무선지원팀장(전무) 단 2명이다. 전무 승진자 32명 중 IM부문 승진자는 6명에 그쳤다. 승진자가 거의 없어 당초 200여명 수준이던 IM 임원은 150여명으로 줄었다는 분석이다. 50여명은 다른 계열사로 이동했거나 회사를 떠났다는 관측이다. 사장단 이하 임원 규모 축소로 올해 중국 브랜드의 저가 공세에 고전한 IM부문이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몸집 줄이기와 함께 대대적인 조직 수술이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가전(CE)부문도 소폭 개편이 예상된다. 이미 의료기기사업부는 자회사인 삼성메디슨과 합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에서 삼성메디슨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의료기기사업부가 빠지는 반면에 생활가전사업부는 일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IM부문 미디어솔루션센터(MSC)에 있던 스마트홈 관련 조직과 인력이 생활가전사업부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스마트홈은 윤부근 CE부문 사장이 집중적으로 챙기고 있다.
반면에 DS부문은 변동이 없을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에서 유일하게 임원 승진자 수가 늘었다. 올해 실적에서 선방했고 견조한 성장세 유지가 기대됨에 따라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김준배·배옥진·정진욱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