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 사업이 700㎒ 주파수 할당 지연으로 표류가 불가피하게 됐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재난망 용도로 700㎒ 주파수 대역 이용 방안을 사실상 확정했지만, 당초 15일로 예정된 국무조정실 산하 주파수 심의위원회가 연기됐다. 이에 따라 재난망 용도의 700㎒ 주파수 대역 이용 방안 결정이 상당 기간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보전략계획(ISP) 사업자를 선정하고 700㎒ 주파수 대역 선정을 기다리던 재난망 사업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주파수 관련 전문가는 “집을 설계했는데 나중에 그 위치가 아니라면 책임을 누가 지겠는가”라며 “재난망 사업 역시 주파수 대역과 소요량이 확정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국무조정실은 700㎒ 주파수 이해관계자인 지상파방송사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심의위원회를 연기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여야를 포함한 국회와 지상파방송사의 강력한 반발을 감안한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재난망 사업이 이해집단의 여론몰이로 재차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국회와 지상파방송사는 700㎒ 대역 20㎒ 폭을 재난망에 할당하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전제했지만, 700㎒ 주파수 대역 중 이통 용도로 할당된 40㎒ 폭은 물론이고 108㎒ 폭 전체의 용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내놓고 있다.
국회와 지상파 방송사는 이통 용도로 할당된 대역과 재난망 용도 대역을 제외하면 UHD 방송 상용화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기존 이통 용도 할당 대역을 포함해 700㎒ 주파수 용도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옛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012년 1월 700㎒ 주파수 대역 중 40㎒ 폭을 이통 용도로 지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회와 지상파방송사의 주장은 옛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주무부처가 결정한 주파수 정책을 사실상 백지화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일축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통용 40㎒ 폭과 재난망 20㎒ 폭을 제외한 48㎒ 폭으로는 UHD 방송이 어렵다는 논리도 합리성이 결여됐다는 판단이다. 지상파 방송사 주장처럼 54㎒가 필요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또, 지상파 방송 직접 수신 가구가 전체 가구의 6.8%에 불과한 실정에서 공공재인 주파수를 요구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ICT 전문가들은 미래부와 국회, 지상파방송사간 역학관계를 감안해 700㎒ 주파수 이용 계획 자체가 원점에서 재검토되는 등 주무부처의 결정이 무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동시에 700㎒ 주파수가 자칫 제2의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이 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ICT 전문가는 “정부(규제개혁위원회)가 단통법의 핵심인 분리공시를 특정 제조사의 반대로 제외한 것처럼, 700㎒ 주파수 이용 계획도 국회와 지상파방송사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15일 주파수 심의위원회에서 재난망 용도 700㎒ 주파수 대역을 확정하려던 미래부는 난처한 처지다. 현재 상황에서 심의위원회 개최를 기약할 수 없는데다 개최된다 하더라도 기존 미래부의 700㎒ 주파수 이용 방안을 고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700㎒ 주파수 논란으로 재난망 사업 자체가 장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김원배·안호천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