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필립스전자가 출시한 이유식 제조기는 재고가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를 모았다. 이유식을 집에서 직접 만들려면 1시간 이상 재료를 다지고 끓이고 채로 걸려야 한다. 하지만 필립스 이유식 제조기는 재료를 기계에 넣기만 하면 먹기 좋은 이유식이 되어 나온다. 주부가 열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던 제품 판매량은 2011년부터 급감한다. 필립스 내부에선 유사 저가 제품이 시장에 쏟아진 탓으로 보고 가격 인하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필립스 임원진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원했다. 이에 따라 1억 4,000만 건에 달하는 육아 블로그와 육아 관련 사이트 36곳 게시판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저가 유사 제품이 아닌 집으로 배달되는 이유식 때문에 매출이 떨어졌다는 알게 됐다.
데이터 분석 후 필립스는 광고 메시지를 바꿨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 먹이는 사랑이 담긴 이유식”이다. 이 메시지를 강조하고 6개월 뒤 매출은 다시 올라가 시장 1위를 차지하게 됐다.
시장에 이미 더 값싼 유사 제품이 즐비했지만 필립스는 가격을 내리지도 않았고 기능 업그레이드를 한 것도 아니다. 단지 광고 컨셉트만 바꿨을 뿐인데 소비자는 다시 이 제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빅데이터(Big Data) 분석은 이런 것이다. 수집 능력 뿐 아니라 데이터를 읽고 해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 필립스의 데이터 분석 사례는 또 다른 마케팅 인사이트를 준다.
소비자는 끊임없이 편한 걸 찾는다. 과거에는 1시간 이상 힘들여서 만들던 이유식을 이유식 제조기 출시 후에는 재료를 넣기만 해도 만들 수 있게 됐음에도 나중에는 그것조차 귀찮아 집으로 배달해주는 이유식을 택한 것이다.
상상해보라. 빅데이터 분석으로 재기에 성공한 필립스의 성공을 지켜본 이유식 배달 서비스 업체는 어떤 대응을 해야 했을까. 필립스는 경쟁사가 대응할 새로운 전략에 2차, 3차 전략을 세워뒀을까. 빅데이터 분석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Event) 패턴을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어떤 분야든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면 경험이 중요하다. 처음 시작은 더디지만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다음 도전까지의 시간은 짧다. 빅데이터 분석 시장이 성장하려면 익숙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데이터 분석 기반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분위기를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의사결정권자인 CEO다.
CEO가 먼저 관심을 갖고 직접 실행까지 가야 한다. CIO나 CFO 등이 핵심인 업무는 시장 형성이 명확하다. 예산을 정하고 CEO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된다. 하지만 CEO가 직접 관여하는 분야는 대부분 CEO 머릿속에 있고 구체화된 게 없는 경우도 많아 성장이 느리다.
시장 선도 기업은 남들이 시작하기 전에 먼저 뛰어든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투자 리스크가 있는 외부 비정형 데이터가 부담스럽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업 내부 데이터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 분석 효과를 경험해보는 것이다.
만일 그동안 쌓은 기업 내부 데이터가 없다면? 우리나라 소비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네이버 검색 네트워크만 살펴봐도 경비 절감이나 리스크 감소, 고객 만족 증대와 새로운 시장 개척이 가능하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전자신문인터넷 테크홀릭팀
장병수칼럼니스트 techhol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