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최경환 부총리가 잇달아 ‘기업인 사면론’을 꺼냈다. 재계는 반색했지만 시민단체 비판은 거세다. 경제 살리기와 무관하며, 법치주의 실종이라는 비판이다. 기업 투자 활성화가 절실한데 적절한 메시지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자연스레 수감 중이거나 형이 확정된 몇몇 그룹 회장들이 거론된다. 그런데 다른 인물이 더 먼저 떠오른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마침 그의 회고록(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이 나와 그런가 보다. 그와 DJ의 관계, 경제관료와의 갈등까지 몰랐던 대우 해체 스토리를 담았다.
물론 그의 일방적 주장이다. 반론도 듣고 판단할 일이다. 법원 판결도, 피해자도 있어 더욱 그렇다. 다만, ‘세계경영을 모토로 지나치게 투자만 벌리다가 부실을 초래해 몰락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다시 보게 된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한다. 패자 김우중에 대한 일방적 평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금융자본보다 산업자본 덕분에 발전한 한국 경제다. 산업자본 성장은 개발독재 시절 강력한 산업육성 정책 덕을 봤다. 수출입국 정책과도 맞물려 세계화도 앞장섰다. 그래도 자본주의 맹주는 금융자본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산업자본 후원자 쯤으로 여겨졌다. 자연스레 갈등이 생긴다. 경제 성장기엔 표면화하지 않다가 IMF 환란 때 폭발했다.
선진국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각각 한국 금융시장 진입 확대와 한국 산업 견제 목적이다. 산업자본은 ‘우리까지 망가지면 경제 회생 발판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이 맨 앞에 섰다. 호소는 먹히지 않았다. 대우는 해체됐으며, 빅딜은 이뤄졌다.
그 이후 금융자본의 독주다. 그렇다고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선진금융기법은커녕 전통적 ‘이자놀이’ 기법만 정교해졌다. 세계화는 되레 뒷걸음질했다. 관치금융도 그대로다. 이러니 외국 금융자본과 투자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이제 기술기업에게도 쫓긴다.
반면 산업자본은 거듭 성장했다.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이 과정에 금융자본 도움은 없었다. 오히려 금융자본은 경제위기를 부추겨 산업자본만 힘들게 만들었다. 정작 위기 때 ‘제 살 궁리’만 했다. ‘키코 사태’가 그랬다. 한국 금융자본 속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 전 회장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그 격정적 토로에 금융사에 대한 현 기업인들의 분노가 겹쳐져 보인다. 산업자본 대표로서 김우중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세계경영은 선진 자본과 기업, 화교자본과 일본 기업도 포기한 나라에 가서 ‘당신네 나라에 한국을 건설해준다’는 방법론이다. 개도국 신흥 산업자본의 성공 비결이다. 지금도 유효하다. 전통산업이 ICT산업으로 바뀔 뿐이다. 중국 동북지역을 우회 개발해 북한 개방을 이끌어내자는 그의 전략은 ‘통일대박론’의 현실적 해법으로도 읽힌다.
김 전 회장은 이미 사면을 받았다. 미납한 추징금도 새삼 적절성 논란을 빚는다. ‘제 잇속만 챙긴 기업인’이라는 낙인만 15년 전 그대로다. 정부와 사회가 산업자본에 엉뚱하게 씌운 멍에다. 이 잘못이 컸음을 인정해야 산업자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제 일을 더 잘하게 만들 수 있다. 기업인 사면보다 더 절실한 일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