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화 예약 진료행위 `YES` vs `NO`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금지한 개정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으로 정부와 병원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병원계는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금지한 인터넷과 전화예약부터 진료행위가 시작된다며 예외적용을 주장한 반면에 안전행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예외적용 법적근거를 찾지 못한 채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금융 등 다수 산업이 법 시행 이전에 예외적용 법적근거를 확보한 반면 병원 산업은 법 시행 후 대응에 나서 예외적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6일 대한민국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 내부 세미나로 진행된 ‘개인정보보법 개정에 따른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병원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로 의료사고가 우려돼 개인정보보호법 예외적용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안행부, 정보화진흥원 등 정부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취지를 적극 설명하는 데 그쳤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에 따른 병원계 쟁점은 인터넷이나 전화로 진료 예약 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원에 직접 와서 예약을 하는 것은 진료행위로 인정하지만 인터넷과 전화예약은 진료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현재 복지부의 유권해석이다. 안행부는 개별법 주무부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수집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병원계는 인터넷·전화 예약은 진료행위 시작이라며 환자 오인으로 의한 의료사고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조주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외래원무팀장은 “전자의무기록(EMR) 등 의료정보시스템이 구축돼 전화·인터넷으로 예약이 이뤄지면 환자정보가 시스템에 입력돼 진료 과정에서 더 이상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지 않는다”며 “인터넷·전화 예약이 진료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등록번호 수집 없이 이름, 전화번호, 주소 등만 수집하면 개명이나 전화번호·주소 변경 등에 의한 환자 오인으로 사고가 발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연세의료원의 환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성명과 생년월일이 같은 환자가 전체 중 5.1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휴대폰 번호와 주소를 기입하지 않은 환자도 25%로 높다.
선홍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래원무 파트장은 “세브란스병원 환자 중 김영자 환자만도 3033명에 이르고 이 중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도 5명이 넘는다”며 “이들 중 어떤 방식으로 치료방법이 다른 각각의 김영자 환자를 구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건강보험 적용여부를 반드시 진료 전 조회토록 하는 정부 정책에도 반대된다고 강조했다. 선 파트장은 “7월 1일부터 건강보험 무자격자 보험급여 미적용이 의무 적용돼 사전 자격 조회를 의무화 했다”며 “그러나 주민등록번호를 알지 못하면 이를 조회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안행부는 개별법에 예외적용을 법적 근거로 두는 경우에는 수집을 허용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보였다. 유권해석을 내려야 하는 복지부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논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미라 복지부 사무관은 “전문가와 병원계 의견을 들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인터넷·전화 예약이 진료행위라면 예외적용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대응방안 마련이 시작된 만큼 예외적용 논의와 함께 내년 2월 전까지 법에 따른 정보시스템 개편 등 대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건강보험 조회 등 의료분야에만 적용되는 메디핀을 도입,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김선욱 법무법인세승 변호사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처리 관련해 병원 특수성을 고려한 안행부령이 제정돼야 할 법적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