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봉오리를 맺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꽃을 피우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인 데, 우리나라는 컨트롤타워도 없고 진흥이 매우 부족합니다.”

이재화 한국의료기기조합 이사장의 진단은 차가웠다.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의료기기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그리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의료기기조합은 1979년 설립돼 올해로 35년이 된 단체다. 회원으로 가입된 520여개 기업들은 국내 의료기기 생산의 절반 이상을, 수출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명실상부 국내 의료기기 제조 기업과 산업을 대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조합을 이끄는 이 이사장의 이야기는 절박했다. 이대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최근 의료기기 제조 기업들은 이중, 삼중의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국내 병원들이 국산 의료기기를 구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초기 국산 의료기기의 성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개발로 이제는 외산 제품들보다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 나오고 있는데도, 과거의 경험 때문에 병원에서 외면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이 비교 테스트한 결과 국산 제품이 기존 제품보다 우수하거나 동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 종합병원의 77%는 외산(영상의학장비 기준)만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수출은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해외 시장 개척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진출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최근에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그는 “중국 의료기기법이 바뀌면서 검사가 강화됐다”며 “아무래도 중국 기업들보다 정보 습득이 제한적인 우리 기업들은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늦을 수 밖에 없는데, 새로 인증을 받기까지 판로가 막히기 때문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이재화 이사장은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만나 수출 확대를 위한 정부의 지원을 건의했다. 해외 시장 개척이 필수인 상황에서 내년도 해외 전시회 지원 예산이 16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줄어서였다. 건의가 받아들여져 예산은 전보다 소폭 증액됐지만 진흥에 대한 부족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 이사장은 “국내 의료기기 생산액이 4조원을 넘고, 세계 11위 규모가 됐다고 하지만 100년 이상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등 아직 갈길이 멀다”며 “‘세계 7대 강국 진입’이나 ‘신성장동력 육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업 진흥을 강화해야 하고 같은 맥락에서 산업부·미래부·복지부 등 흩어져 있는 연구개발(R&D) 투자도 컨트롤타워에 의해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산업 환경을 메마른 땅에 비유했다. 이 이사장은 “의료기기 산업에 매력을 느껴 많은 기업들이 진출하지만 성공해 이름을 낸 기업들은 소수에 불과한 척박한 땅이기 때문에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씨앗만 뿌려서는 안 되고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양분이 충분하게 제공되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화 이사장은 1970년 우송대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의료기기 전문 기업 대성마리프를 설립했다. 코트라(KOTRA) 자문위원, 경기도 의료기기 IICC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2년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제15대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조합을 맡아 의료기기 제조 기업들의 수출 증진, 재직자 교육, 제품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