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금융공기관은 ‘신의 직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국내 기업과 돈’을 담당하는 내수기관으로만 인식돼 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창조경제의 코드를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기업 지원도 ‘내수’를 너머 ‘글로벌’로 넓혀야 한다는 진단이 잇따랐다.
금융공기관도 이에 부응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해외로 진출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목표는 뚜렷하다. 금융공기관도 이제 한국을 넘어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해외 자본과 경쟁해 ‘패권’을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IT와 금융의 결합, 결과는 해외 수출
금융공기관의 직접 수출 비즈니스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기업 지원 일변도의 간접 지원 방식에서 탈피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IT+금융’ 수출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나섰다.
한국거래소는 동북아 최고 자본시장을 목표로 KRX국제화를 전략적으로 추진 중이다. 한국형 증시인프라 해외 직접 보급을 확대해 아시아 증시의 영향력 확대는 물론 증권업의 해외진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아울러 증권시장 IT시스템의 해외 수출을 통한 수익원 확보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라오스, 캄보디아 증시 개설사업을 완료했고, 우즈벡·카자흐스탄·네팔 등지의 증시 현대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벨라루스와 아프리카권 등 신흥시장 개척 사업에도 나설 예정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국형 IT시스템 현지 보급이 완료되면, 한국 증권의 현지 진출이 가속화되는 효과가 있다”며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거래소는 올해 남미권의 페루, 중앙아시아 우즈벡, 네팔 등으로 현지 사업 다각화를 중점 추진하고 있으며, 증시 IT시스템 수출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코스콤도 이란, 태국 등 이머징 마켓 금융IT회사들과 협력 체제를 구축해 한국자본시장 IT인프라 수출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말레이시아 거래소 3개 시스템과 라오스 증권거래소, 캄보디아 증권거래소 시스템의 유지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며 태국 청산결제 프로젝트는 2015년 1월 구축 완료를 목표로 다양한 수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해외 네트워크 구축, 공기관 현지화 ‘가속’
글로벌 비즈니스의 성공 여부는 ‘현지화’다. 해외 현장 중심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적시에 지원하느냐가 금융공기관의 숙제다.
IBK기업은행은 23개 국외점포와 세계은행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현지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 국내 중소기업 진출이 활발한 주요 아시아 신흥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월 베이징 분행을 개점해 중국에서만 15개 영업망을 구축했다.
세계 2위 인구대국인 인도에서 기업은행은 기존 사무소를 지점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며, 2015년 1분기 영업을 개시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올해 사무소 개설 후 현지은행 지분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캄보디아에도 사무소 개설을 추진한다.
당장 점포 개설이 어려운 지역은 현지 은행과의 협력제체를 구축해 영업망을 공동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특히 제휴은행을 통해 대금결제용 어음거래부터 중소기업의 계좌개설, 현지정보 제공 등 글로벌 동반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정책금융 개편과 함께 금융산업 먹거리 창출을 위해 ‘창조산업 해외 진출과 글로벌화 지원’을 올해 모토로 내걸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시 공동 진출해 해외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복안이다.
지난해 6월에는 개발은행 최초로 미얀마 양곤 사무소를 개설하고 11월에는 태국 방콕 사무소, 올해 7월 필리핀 마닐라 사무소를 잇단 개설하면서 현지화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밖에 중국에 북경, 광저우 지점에 이어 선양사무소를 지점으로 전환했고, 2015년 칭다오지점 신설을 추진 중이다. 일본 오사카 출장소 개소를 통해 중국 동북 3성과 산동성, 일본 관서지역을 잇는 기업 현지화 지원 인프라를 구축했다. 현재 16개국에 20개 지점을 운용 중이다.
개발금융 노하우 수출에도 나서고 있다, 몽골개발은행과 위탁경영을 체결, 개발금융 노하우를 해외에 전파했다. 베트남 개발은행, 방글라데시 재무부 등 동남아시사 금융기관과 공무원 대상으로 금융노하우 수출작업을 펼치고 있고, 지난 6월에는 ASEN 및 중앙아시아 공무원 대상으로 개발금융 연수를 실시하는 등 아세안과의 금융협력 강화 및 중앙아시아 에너지 협력외교 기반을 구축하는데 일조했다.
올해 산업은행에 통합되는 정책금융공사도 중소·벤처기업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 자금지원과 현지화를 펼치고 있다. 한국-GCC 협력펀드와 한국-호주 협력펀드, 한국-중국 협력펀드 등 조직 현지화보다는 자금 현지화 조달 방식으로 해외 비즈니스 영토를 넓히고 있다.
◇박근혜 정부 세일즈 외교 뒷받침
국내 금융공기관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임무는 정부 세일즈 외교를 뒷받침하는 첨병 조직으로 정부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영국 등을 순방하며 광범위한 세일즈 외교가 펼쳐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금융공기관도 이를 측면지원하기 위한 제도 마련과 다양한 자금지원이 한창이다.
수출입은행은 수은법을 개정해 글로벌 공적수출신용기관 체질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기존 수은법이 1969년 제정 당시 일본수출입은행법을 모델로 하고 있어, 현재의 다양한 대외거래와 기업 금융수요에 적절히 대응하는데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수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서 가결된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에 국가 간 EDCF자금 활용이 한층 두터워 질 것으로 기대된다.
수은은 법 개정으로 법정자본금을 기존 8조원에서 15조원을 2배가량 늘릴 예정이다. 이를 통해 중견기업의 해외진출 지원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업무규정 체계도 포괄주의 방식으로 개정해 다양해지고 있는 대외금융수요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정책금융기관으로 역할을 명확히 하기 위해 업무분야에 중소·중견기업 해외진출을 명시했다.
[표]금융공기관 해외 사업 현황
(자료: 각 사 취합)
◆해외진출 우수 사례:본업을 수출한다...부실채권 정리 노하우 세계로 전파하는 ‘캠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대표 홍영만)은 독특한 방식으로 해외 수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다른 금융공기관이 기업지원 현지화와 IT를 결합한 시스템 수출 등에 주력하고 있다면, 캠코는 주업무인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 노하우를 해외로 수출하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국내 금융기관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캠코가 20개국의 정상 앞에서 “IMF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기관”이라고 소개됐다.
당시 대통령이 직접 세계 금융선진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금융공공기관인 캠코의 성공적 금융구조조정 사례를 발표하면서 각 국 정부와 부실채권정리기관이 캠코의 부실채권 정리성과와 한국식 부실채권정리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직접 캠코에 부실채권관리 및 기업구조조정 노하우 전수를 문의하기도 했다.
국내 채권관리 업무에만 주력했던 캠코는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부실채권의 신속한 정리를 위해 해외투자유치를 목적으로 해외투자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캠코에 대한 전문성과 공신력을 해외기관으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G20서울정상회의’를 계기로 캠코의 전문성과 우수성은 더욱 견고해졌다.
캠코는 기존의 부실채권 정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동안의 위기극복 경험과 노하우를 가치 있는 지식자산으로 체계화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지식자산의 활용을 통해 공사가 해외 유관기관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지식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지난 5월 영국 금융투자공사와 양국의 경제·금융산업에 대한 이해 증진과 공적자금 운용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체결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1998년부터 현재까지 중국, 러시아, 독일, 대만 등 14개국 20개 부실채권기구·공공금융기관 및 아시아개발은행(ADB)등과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부실채권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는 연수사업 및 컨설팅을 실시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1997년 부실채권정리기금 설치 당시부터 16년 동안 축적한 노하우 및 역량을 바탕으로 베트남의 재무부 산하 부실채권 정리기관인 DATC(Debt and Asset Trading corporation)를 대상으로 지식 컨설팅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는 기획재정부에서 주관하는 ‘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KSP, Knowledge Sharing Program)’의 일환이다.
베트남과의 KSP사업은 캠코가 2001년 DATC 설립단계부터 베트남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DATC 조직운영과 업무 능력 배양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베트남에 이어 2013년 말 카자흐스탄 중앙은행(National Bank of Kazakhstan)이 카자흐스탄의 높은 부실채권 처리문제와 관련 중앙은행 산하기관인 부실채권정리기금(FPL)에 대해 기재부에 캠코의 정책자문을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정책자문기관으로 선정 시 빠르면 하반기부터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캠코는 지난 2001년 4월 중국의 화융자산관리공사를 시작으로 총 25회에 걸쳐 12개국 456명을 대상으로 선진화된 부실채권정리기법 및 금융구조조정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아시아 역내 경제안전망 및 글로벌 NPL 지식 허브를 공동구축하고 금융한류를 선도해 나가고자 국내 최초 공기업 주도로 ADB와 공동으로 5개국 7개 회원기관으로 구성된 IPAF (International Public AMC) 라는 비정부 국제기구를 창설하고, ADB내 IPAF 사무국을 설치했다. 그 후속조치로 ADB와 회원국 간 경험과 지식공유 활성화를 위해 지난 14년 3월 IPAF 사무국에 캠코 직원을 파견했으며, 이는 캠코의 경제위기 조기극복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하는 아시아 지역 신흥국의 요청이 반영된 것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제1차 IPAF 연차총회에 이어 제2차 IPAF 연차총회 및 대표회담이 이달 중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며, 이번 대표회담에 한국 예금보험공사, 태국 공공자산관리공사(BAM), 베트남 공공자산관리공사(VAMC) 및 중국 동방자산관리공사(China Orient Asset Management Corporation) 등 신규기관이 추가 회원 또는 공식 참관기관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