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갈등으로 두달여간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에 오른 KB금융그룹 경영진에 ‘동반 경징계’가 내려졌다. 결론 도출이 상당히 지연된 데다 사전 통보된 징계 수위보다 낮아지면서 금융당국의 ‘손보기식 징계’라는 지적도 나왔다. 감정의 골만 깊어진 수뇌부가 사태를 수습하고 내부 갈등을 봉합할 수 있을 지 관건이다.
21일 금융감독원은 자정을 넘긴 마라톤 제재심의위원회 끝에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 행장에 각각 ‘주의적 경고’ 단계의 경징계를 결정했다. ‘주의→주의적 경고→문책경고→직무정지→해임권고’ 5단계로 나뉘는 금융사 징계 수위 가운데 경징계 범위다. 당초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예고하며 칼을 뽑았던 금감원의 ‘큰 소리’는 무색해졌다.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에 대해서는 ‘기관경고’ 조치를 했다.
이날 제재심의위에는 임 회장과 이 행장 이외에도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 정윤식 전략본부 상무, 조근철 IT본부 상무 등이 대거 참석해 소명했다. 앞서 14일에는 김재열 KB금융지주 최고정보책임자(CIO) 등이 참석한 바 있다. 이번 제재에 양측 IT 관계자가 대거 포함되는 만큼 초유의 금융권 IT임직원 제재 사건으로도 남을 전망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임 회장과 이 행장 외 총 91명의 임직원에 대한 제재조치가 의결됐다.
경징계로 일단락된 임 회장의 징계 수위는 IBM 주전산기 교체 갈등에 대한 관리 책임을 과중하게 묻기 어렵다는 제재위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주사 CIO가 은행 이사회 안건에 개입하는 과정을 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은행 이사회와 경영진간 마찰에 지주 회장으로서 개입에 한계가 있었다는 소명이 받아들여져 징계 수위를 낮췄다.
역시 경징계를 받은 이 행장은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실대출의 지휘 책임 문제가 핵심 사안이었다. 사건 발생 당시 리스크 담당 부행장으로 재직했던 이 행장의 책임 여부를 과하게 묻기 어려웠다는 것이 금감원 입장이다. KB 주전산기 교체 문제의 경우 당국에 제기한 당사자란 점이 반영돼 수위를 낮추는 데 일조했다. 이 행장은 이날 저녁 소명이 끝난 후 금감원을 나서면서 주전산기 교체 결정에 대해 금감원에 요청한 것을 두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번 결정으로 임 회장과 이 행장, 정병기 상임감사 등은 일단 퇴진 압박에서 멀어졌다. 단 임 회장의 KB카드 분사시 개인정보 이관 건은 이날 안건에 상정되지 못해 남았다.
금감원은 결국 KB금융 계열사를 비롯한 금융권 전반의 인사·업무 마비 사태 종식 필요성이 불거진데다 10월부터 이어질 국정감사 등 대내외의 압박에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KB금융은 수뇌부 간 벌어진 감정의 간격을 좁히는 일은 과제가 됐다. 노조에서는 회장과 행장이 경영진으로 존속할 경우 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향후 노사 갈등 봉합도 숙제다.
금감원은 “최종 제재양정은 금감원장 결재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징계 수위 논란과 길어진 금융권 경영 공백 등 책임은 면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SK C&C가 입찰한 이후 잠정 보류된 KB국민은행의 유닉스 전환 프로젝트는 경영진의 징계 수위 처분에 대한 향후 계획이 완료되는 시점 이후까지 당분간 미뤄진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아직 프로젝트의 보류 풀리는 시점을 예상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표. 8월21일 금감원 제제심의위원회 결과
표. KB국민은행 주전산시스템 변경 관련 주요 일지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