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가 포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2016년이다. 최대 2024년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미지수다. 앞으로 수년 내에 원전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 전력 수급도 걱정이지만 정작 문제되는 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다. 내부 임시 저장 시설이 원전 설계수명과 같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마련을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국민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본지 8월 21일자 1·14면 참조) 일반 국민은 사용후핵연료가 막연히 위험하다는 사실 외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정보의 불균형 탓이다.
전자신문은 ‘사용후핵연료, 해법을 찾자’는 주제로 4회에 걸쳐 국내 핵연료 관리 실태와 방향성을 점검했다. 마지막 결산으로 ‘사용후핵연료 전문가 좌담회’를 열어 지금까지 나온 논란을 짚어보고 한국형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모색했다. 좌담회에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던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연합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참석자들은 공론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한편 국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
△강철형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부이사장
△김경수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장
△김혜정 환경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
△유연백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국장
△전봉걸 서울시립대학교 교수(가나다 순)
△사회 : 강병준 전자신문 부장
▲공론화, 과정과 절차가 중요
◇사회(강병준 전자신문 부장)=최근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추진한 모든 정책을 백지화하고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수용성 높은 대안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추진해온 공론화 과정에 대해 평가해 달라.
◇유연백 산업부 국장= 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서 갈등의 소지가 있는 분야다. 특정 부처나 조직이 맡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0년 전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에서도 많은 갈등이 있었다. 갈등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공론화 과정 중 국민이 인식하고 고민하면서 합리적이고 수용성 높은 관리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공론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가는 것은 민주 사회로 한 단계 진전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론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철형 원자력환경공단 부이사장= 사용후핵연료 처분방식을 공론화에서 결정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다. 공론화위원회에서는 관리방안을 논의하는 게 맞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결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은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 이때 국민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공론화도 한 과정이다.
◇김경수 원자력연구원 부장= 공론화위원회 활동이 다소 소극적이라 이슈화가 안 되고 있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는 소외된 느낌이다. 일부 전문가 집단이나 이해관계자만 토론한다. 여론을 모으기에는 부족하다. 시급한 게 저장이라는데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최종 목적은 어차피 처분이다. 우리나라는 저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최종처분에 대한 프로그램이 제시돼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있다고 본다. 언제 처분할 것인지를 국민에게 물어볼 필요 없다. 이는 정부 몫이다. 최종처분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저장사업이 왜 필요하고 언제까지 할 것인지 얘기할 수 있다.
◇전봉걸 서울시립대 교수=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도출은 상당히 시급한 과제다. 중요한 이슈지만 국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 저장과 처분 중 선택의 문제다. 공론화위원회 전문가 그룹에서는 최종처분까지 간극이 너무 멀어 전면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김혜정 환경연합 위원장= 늘 시급하다는 게 화두였다. 단 한 번도 시급하지 않다고 한 적이 없다. 중저준위 방폐장 선정 때도 그랬다. 사용후핵연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2016년부터 포화될 것이라 했지만 2024년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시한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다. 올해 안에 마무리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 과제 중 하나가 임기 내에 부지선정하고 착공한다는 것이다. 공론화는 결국 첨예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국민 신뢰와 합의 하에 결정하는 것이다. 시한을 정해놓고 한다고 합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토론회가 시작된 것은 6월부터다. 연내에 합의를 도출한다는 것은 무리다.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질 수 없다.
▲공론화, ‘정부 개입 VS 개입 불가’
◇사회= 공론화위원회가 이미 정답을 갖고 출범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유연백= 정부가 의도를 갖고 공론화한다는 시각은 답답하다. 실제 공론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일절 개입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다. 시급성과 포화 문제는 유동적이다. 신규원전에 따른 여유공간 확대나 조밀랙 방식으로 포화시점이 연기될 수도 있다. 어느 시점에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석유고갈 문제와 유사하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2024년이 맞다. 시급한 것은 현실이다.
◇강철형= 공론화 특성상 기한 없이 할 수는 없다. 목표가 있어야 내실 있게 진행된다. 여유 있다고 하면 국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혜정=산업통상자원부가 주체다. 조밀 랙, 신규원전 등은 예측 가능한 것이다. 결국 예측 실패를 정부가 자인하는 셈이다. 위원회가 오해를 받고 있다는데 공론화 실행 계획이 있다. 부지지원 방안과 유치지원 계획이 들어있다. 부지선정과 관계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최근 전문가 그룹에서 원전 내에 중간저장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도 위원회가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 그룹에서는 공론화위원회를 보조한다고 했지만 이것은 위원회에서 내놓을 내용이 아니다. 이게 불신의 고리가 되는 것이다.
▲공론화위원회에 환경단체 제외?
◇사회= 공론화위원회가 당초 15명으로 추진됐는데 환경단체에서 참여하지 않아 기형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김혜정=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될 때 탈퇴했으니 정리된 문제다. 위원회 구성할 때 제대로 된 공론화를 하려면 다양한 그룹이 들어오도록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환경·시민단체 몫은 2명이었다. 나머지 13명은 다른 분야다. 공론화에는 전문가도 중요하지만 사회학자가 필요한데 시민단체가 추천한 인사는 전부 제외됐다. 위원회 구성안도 공개를 하지 않다가 발표 전날에야 공개했다. 탈퇴한 이유다. 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
◇전봉걸= 원전 확대나 재처리 정책 등 사용후핵연료가 당면 과제라면 시민단체가 참여해 정부가 일방적인 결정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소통창구가 바로 위원회다. 계속 의견을 제시해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위원회 밖으로 나와서 얘기하는 것은 책임회피다.
◇강철형= 위원회가 편향된 구조라지만 정작 원자력 전공자는 1명 있다. 지역 주민이 5명이다. 결코 환경단체에 배정된 인원이 적지는 않다.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말이 많다. 추천한 사람이 안 들어갔다고 해서 공론화 위원회 구성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서로 자격 갖고 시비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
▲사용후핵연료 포화 눈앞... 영구처분 논의해야
◇사회=사용후핵연료 포화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중간저장이나 재처리가 핵심인 것처럼 보도되기도 한다. 어떤 식의 해결책이 바람직한가.
◇강철형= 사실 포화기간이 늘어난 원인 중 하나인 월성원전 내 건식저장 시설 ‘맥스터’도 지역주민이 합의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지역주민이 합의 안 해주면 건설을 못하기 때문에 당장 2018년부터 포화다. 중간저장과 재처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본다. 중간저장과 처분을 혼동하면 안된다. 중간저장은 어디까지나 임시다. 영구처분에 대비한 단기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런 것들이 공론화에서 논의돼야 한다.
◇김경수=연구원에서 볼 때는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의 경우 정치적인 논리를 제외해도 국내 적용 여부는 2020년대나 돼야 윤곽이 잡힌다. 물론 이때도 한미 원자력협정에 변화가 없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20년에 재처리 할 수 있다해도 처분 시점에는 영향이 없다. 월성원전처럼 중수로 방식은 재활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저장 시설을 짓지 못하면 2024년에 영구처분을 시작해야 한다. 중간저장 시설을 지어도 최대 2070년을 넘길 수 없다. 그렇다고 영구처분 방식을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것을 가져다 쓸 수도 없다. 국내 환경과 맞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지하연구시설(URL)이 필요하다. 국내 지하 환경에서 직접 실증하고 국민에게 안전하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정부 신뢰 회복과 기술 개발 선행돼야
◇사회=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경수= 사용후핵연료 관리 사업은 마지막이 처분이다. 처분에 관한 정부 안이 없으면 저장이나 재활용을 논의하기 어렵고 국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사실 처분 방식은 국민이 잘 모른다. 처분 시점은 전문가 그룹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다만 처분 장소 선정이 갈등요소다. 임시저장이나 중간저장은 공학적인 기술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처분은 안 된다. 외국에서 사용하는 구리 저장용기도 수명은 1만년 정도만 보장할 수 있다.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방사능이 떨어지는 나머지 30만년은 자연에 맡기는 것이다.
인류 역사가 이보다 짧은데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외국은 이미 30년 전에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후발국가에 속한다. 선행국가 대비 기술 진척도는 60~70%다. 지하 연구 시설(URL)은 30% 수준에 불과하다. 처분 관련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원자력연구원에 28명, 원자력환경공단에 10여명 등 우리나라를 통틀어도 50명 남짓이다. 이 인원이 23기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원전 보유 세계 5위국의 현실이다.
◇강철형= 처분 연구가 소규모로 진행되는 게 사실이다. 진척도가 늦다하지만 인력수준은 사실 높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특정지역에 국한됐지만 사용후핵연료는 국민 전체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정확한 정보가 제공돼야 국민이 참여한다. 제시한 의견이 채택 안 돼도 공론하 작업이 투명하게 진행되면 받아들일 것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보니 전문가 의견을 존중해주는 풍토도 마련돼야 한다.
◇김혜정= 시민 입장에서 보면 관리방안 역시 원전 정책에서 나와야 한다. 원전 정책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연료 관리 방안은 원전정책과 직결된다. 재처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연료를 발생시키는 사업자가 안전하게 처분방식을 제시하지 않으면 원전 확대 정책은 중단해야 한다. 최근 공론화위원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 국민 76%가 원전 사고를 염려하고 있다. 한 언론사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65%가 원전 감축 정책 내놓으면 전기료 인상에 동의한다고 했다. 지금 상황은 정부가 원전 확대하고 사용후핵연료는 국민이 앞장서 해결해달라는 것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집단을 포괄해야 한다.
◇전봉걸=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전체적인 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 정부도 잘못은 있다. 중저준위 방폐장에서 발생한 오류를 수정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를 해소하는 게 과제다.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가 문제되면 의논을 통해 인식을 공유하는 자리가 앞서 필요했다. 늦었지만 공론화위원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방폐장 건설하면서 배운 경험을 적용하면 사회적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연백= 정책 신뢰성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간 몇 차례 실패과정에서 대부분 상실했다. 더 아픈 것은 부지선정 과정 속에서 지역갈등을 조장했으나 치유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논의를 다시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공론화 과정을 보는 시각이 따뜻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사용후핵연료는 반드시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해 주체별로 도와줘야 한다. 정부는 특정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지금은 경청의 단계다. 단체 의견을 제출하거나 인터넷, 개별 제안 등 참여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다. 공론화는 그동안 소수그룹으로 해왔던 논의를 확산하는 과정이다. 참여나 지원, 관심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총리실이 차관 주재로 분기별로 보고하고 지원사항을 협의하고 있다. 위원회에서 권고안 나오면 부처별 협의 속도가 더 날 것이다. 도출된 권고안이 실행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리=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