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미국영화 ‘Her’가 그린 미래사회는 고독한 인간 군상이다. 길거리와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SNS, 메신저로만 대화하지 옆사람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아내와 별거 중인 주인공 테오도르 역시 컴퓨터만 옆구리에 낀 채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구입한 컴퓨터 운용체계(OS)는 스스로 이름을 사만다라 짓고 주인공과 교감하기 시작한다. 인간과 OS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둘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만다는 자신이 인격체처럼 진화한다고 여기며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테오도르란 인간의 책을 다 읽은 사만다는 결국 떠난다. 그런데 이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인공지능(AI)은 전 세계적으로 이슈다. 얼마 전 AI식별 테스트인 튜링 테스트를 64년 만에 통과한 프로그램이 등장해 법석을 떨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향후 20년 안에 외부 사물에 관한 구체적 지식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AI이 개발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AI은 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애석하게도 사만다처럼 정보를 습득하지 않고서는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다. 뇌를 모방해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사람과 교감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진 정보를 끊임없이 빨아들여야만 강력한 AI이 탄생한다.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은 방대한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현재 시티은행에서 고객의 거래 내역과 SNS를 이용해 데이터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일을 한다. 왓슨이 지금보다 좀 더 똑똑하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물인터넷은 AI기술의 핵심이다. 개인정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분야다. 인터넷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사물의 각종 정보가 한곳에 모이고, 이 정보를 AI이 활용하게 될 시대가 머지않았다. 전 인류의 책(정보)을 다 읽어 버린 사만다들이 인간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영화 ‘AI’처럼 자신보다 덜 똑똑한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는 날이 올지 모른다는 얘기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