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청출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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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삼성전자에게 TV 사업은 매우 각별하다. 1970년 일본 산요의 기술을 받아 TV를 생산한지 36년 만이던 2006년부터 ‘평판 TV 세계 1등’ 자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부터는 초고화질(UHD) TV도 일본 소니와 LG전자를 제치고 세계 1등을 차지하며 TV 시장의 ‘글로벌 그랜드슬램’을 다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미완의 1등이다. 삼성 TV의 스승격인 일본에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일본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무선사업부(IM) 제품만 판매하고 있을 뿐이다. 2007년 소비자가전(CE) 사업을 철수한 뒤 재진출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1등 삼성 TV는 일본에서 찾을 수 없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과 비교가 안 된다는 일본 업체들과 세계 2등 LG전자만 있을 뿐이다.

마치 1등의 배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삼성전자의 일본 외면은 개운치 않다. 일본이 가전의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어려운 시장이지만 몽골에서 회를 뜨고, 그린란드에서 고기를 구우며 프리미엄 냉장고를 파는 삼성전자이기 때문이다. 이 패기에 힘입어 일본 철수 당시 연간 9조 6000억원이었던 CE부문 매출은 지난해 50조원으로 수직상승했다.

세계 1등 삼성전자 TV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국·유럽에 이은 세계 3대 프리미엄 시장이라는 미완의 퍼즐을 맞춰야한다. 일본 TV가 2012년 “한국 시장에서 삼성·LG 때문에 안 팔린다”며 떠난 것처럼 “일본이니까 안 된다”고 하면 1등의 담대함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난해한 시장에서 키운 ‘맷집’은 삼성전자의 재도약에도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청출어람’이라 했다. 삼성전자는 스승의 나라 일본에서 실력을 보여야 한다. 故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도 일본에서 ‘삼성의 미래’를 구상할 정도로 중요한 일본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이 회장이 귀국길에 올랐던 도쿄 나리타국제공항에는 2010년 일본에 재진출한 LG전자의 OLED TV가 있었다. 삼성 없는 일본을 떠나며 이 회장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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