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관의 엉성한 정책을 비꼰 패러디 사이트를 피싱(phishing) 사이트로 볼 것인지를 가리는 소송이 내달 18일 열린다. 사이버 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해 줄지가 관심 여부다. 소송 주체도 흥미롭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한 공과 대학생이 금융결제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SK텔레콤, LG유플러스를 상대로 ‘150만원짜리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작지만 이번 소송은 정부정책 등을 비판한 패러디 사이트가 불법 피싱 사이트 범주에 들 수 있는지를 가리는 소송이 될 전망이다.
내막은 이렇다. 지난해 4월 금융당국은 금융사 앱을 가장한 피싱 사이트가 증가하자 ‘금융앱스토어’라는 보안강화대책을 발표했다. 금융결제원이 국내 은행의 스마트폰용 앱을 한곳에 모아 ‘fineapps.co.kr’이라는 금융앱스토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스마트폰 사용자는 물론이고 보안전문가에 의해 역풍을 맞았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스마트폰의 보안 설정을 낮춰야 하는 치명적 결함이 발생됐기 때문이다.
금융앱스토어를 설치하려면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는 ‘알 수 없는 소스’라는 옵션을 활성화해야 한다. 보안을 강화하려고 만든 서비스가 오히려 보안을 취약하게 만드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 것.
이에 한 공과대학생이 금융앱스토어를 비판하는 패러디 사이트 ‘금융얩스토어(flneapps.co.kr)’를 개설했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금결원의 금융앱스토어가 얼마나 보안에 위험한지를 풍자한 글을 담고 있다.
금융결제원은 이 패러디 사이트를 특정 사이트 사칭 피싱 사이트로 간주하고, KISA 측에 차단을 요청했다. KISA는 통신사에 사이트를 차단해 달라고 상황전파문을 보냈다. KT는 사이트를 차단하지 않았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만 차단했다.
문제는 KISA가 차단을 요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입장을 바꿔 통신사에 ‘차단 해지’를 요청하면서 다시 사이트가 열렸다.
원고 변론을 맡은 박지원 변호사는 “패러디 사이트는 이미지만 유사하게 만들었을 뿐 개인정보 수집 기능이 없고 내용 역시 글로 비판한 것이 전부인데, 이를 피싱 사이트로 간주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정부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이트 자체를 차단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권력 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보안 전문성을 가진 정부 산하기관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인지, 책무를 다한 것인지 소송을 통해 밝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금융결제원 등은 제 3의 피싱 사이트가 나올 수 있고, 패러디 사이트를 통해 악의적인 금융 사기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차단을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소송과 관련 금결원 관계자는 “자세한 답변을 해줄순 없지만, 소송 관련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