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장관이 한사코 고사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설득에 나섰다
두드리는 곳마다 외면했다. 노무현정부 첫 정보통신부 장관 인선 과정이 그랬다.
노무현정부는 각료 발탁의 기조를 ‘개혁 장관, 안정 차관’에 뒀다. 관료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했다. 고위관료, 학자, 기업인 등이 내심 입각을 희망하며 청와대 전화를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적임자로 점찍어 장관직을 제안하면 당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 입각 제안도 거부당했다. 난감한 일이었다.

진대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의 정통부 장관 발탁 과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와대가 입각 제안을 하자 단번에 거부했다.
이러다간 참여정부의 청사진은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청와대 인사 관계자들은 속이 탔다. 결국 두 번째는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진대제 사장을 설득했다.
그동안 커튼 뒤에 가려졌던 노무현 내각 첫 정통부 장관 발탁의 막전막후를 알아보자.
2003년 2월 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분과별로 소관부처 장관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인사위에서 소관부처 장관 후보자를 심사해 추천했다. 장관직으로 가는 1차 관문이었다.
경제2분과 소관인 정통부 장관 외부 인사추천위원으로는 안문석 고려대 교수(고려대 부총장,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장, 현 고려대 명예교수, 정부3.0 자문단장)와 이주헌 한국외국어대 교수(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역임), 조강환 방송위원회 상임위원(디지털방송추진위원장 역임)이 각각 임명됐다.
산업자원부 장관 외부 인사추천위원은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역임, 현 서울대 명예교수), 온기운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현 숭실대 교수), 정장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한국중부발전 사장 역임)이, 과학기술부 장관 외부 장관추천위원은 천성순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작고) 등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오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및 외부 인사추천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통부, 산자부, 과기부 등 경제2분과 6개 부처 장관 인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노 당선인은 정통부, 산자부, 과기부 인선에 대해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분야인 만큼 미래 예측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의에서는 정통부, 과기부 등 IT 분야 장관으로는 세일즈 능력을 겸비한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제2분과는 2월 8일과 2월 10일에 걸쳐 회의를 열고 정통부와 과기부 장관 후보추천을 마무리했다. 국민인터넷추천제와 분과별 추천, 그 외에 각계 인사를 통해 추천된 장관 후보자들을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박기영 당시 경제2분과 인수위원(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역임, 현 순천대 교수)의 회고.
“외부 인사위원들은 추천된 장관 후보자를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당초 진대제 사장도 외부 인사추천위원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심사를 하려고 보니 진 장관이 후보자 명단에 올라있었습니다. 그래서 진 사장은 인사추천위원에서 배제했습니다.”
정통부 장관 후보자로는 전직 고위관료, 국책연구기관장, 기업체 CEO, 교수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 30여명이 추천됐다. 인사추천위원들은 이들을 놓고 적격 여부를 심사했다. 그 결과 정통부 장관 후보 1순위는 안문석 교수가 뽑혔다.
안문석 교수의 증언.
“김대환 경제2분과 간사(인하대 교수, 노동부 장관 역임, 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가 내게 전화를 했어요. 인사추천위원으로 일해 달라는 겁니다. 갔더니 후보자 명단이 있더군요. 그 명단에 저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장관을 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하려고 왔다. 진심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조건으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추천위원들의 투표결과를 보니 제가 1위로 나왔습니다.”
안 교수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거듭 장관 후보직을 완강히 고사했다.
김대환 경제2분과 간사가 나섰다.
“이제 안 교수님 역할은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안 교수의 회고.
“당시 어윤대 고려대 총장(KB금융지주 회장, 현 고려대 명예교수)이 나를 몇 번이나 찾아와 ‘부총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1년만 부총장직을 맡기로 어 총장과 약속한 상태였습니다. 장관자리도 좋지만 교수가 학교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인사추천위원으로 활동한 이주헌 교수의 기억.
“후보자 명단을 놓고 추천위원들이 적임자에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1순위가 안 교수였습니다. 청와대도 안 교수를 첫 정통부 장관으로 내정했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이 뜻을 꺾지 않고 극구 고사했습니다. 안 교수를 집으로 찾아가 장관직을 맡으라고 권했는데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보자 추천 작업을 다시 했습니다.”
안 교수는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청와대 비서실장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의 전화도 받았다. 문 내정자는 거듭 장관직 수락을 요청했다.
안 교수가 증언한 두 사람의 당시 통화내용.
“왜 그렇게 장관직 제안을 거부하십니까. 혹시 말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첫째는 학교와 한 약속 때문입니다. 둘째는 큰 아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데 국적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도덕적으로 흠이 될 수 있습니다. 노무현정부의 첫 내각 장관들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합니다.”
“노 정부는 자녀 국적문제는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그래도 제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대신 김대중정부 시절부터 맡고 있던 대통령자문기구인 규제개혁위원장은 잔여임기가 1년여 남았는데 임기를 채울 수 있게 배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내정자는 “잘 알겠다”고 대답했다. 안 교수는 정권이 바뀐 후에도 규제개혁위원장으로 1년을 더 일했다.
안 교수 카드가 무산되자 인사추천위원회는 정통부 장관 후보자를 재추천했다.
추천 1순위는 진대제 당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이었다.
박기영 교수의 회고.
“다시 인수추천위원들이 추천자들을 놓고 논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 진대제 사장이 정통부 장관 후보 1순위로 선정됐습니다.”
장관직을 고사한 안문석 교수도 “진 사장과는 일면식도 없고 언론에서 알았다. 기업인 출신이 필요할 것 같아 진 사장을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이 무렵 정찬용 당시 인사보좌관 내정자(청와대 인사수석 역임, 현 인재육성아카데미 이사장)는 극비로 진 사장의 장관 발탁에 대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현 삼성전자 회장)의 의중을 타진했다. 이 회장의 양해 없이 진 사장을 각료로 발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 사장은 노무현정부의 장관 제안 사실을 회장비서실을 통해 알았다. 진 사장은 “턱도 없는 소리”라며 한마디로 이런 제안을 일축했다.
이와 관련한 정찬용 내정자의 증언.
“진 사장은 세계적인 그 분야 전문가로 인수위에서 정통부 장관 후보자로 욕심을 냈다. 국민을 먹여 살린 IT산업을 발전시킬 적임자라는 기대를 갖고 뒤늦게 정통부 장관 후보로 올렸다.”
정 내정자의 이어진 회고.
“진 장관은 ‘삼성전자 사장으로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정통부 장관은 영광스럽지만 지금은 회사를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며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나는 거듭 삼성 측에 장관직 수락을 설득했으나 진 사장의 뜻은 완강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전화로 진 사장을 설득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런 와중에 진 사장의 인사 내용이 언론에 새 나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진 장관도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당선자 측 누구로부터 장관직 제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2월 중순경 청와대에서 그룹회장실로 입각 의사를 타진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해외에 나가 부재중이었습니다. 이학수 회장비서실장(삼성전자 부회장, 삼성물산 고문 역임)이 제게 그런 내용을 전하며 ‘입각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기에 ‘무슨 소리냐. 그런 생각이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당시 하와이에 머물던 이 회장에게 편지로 ‘장관으로 갈 생각이 없다’는 분명한 뜻을 전했습니다. 그 후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천성순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장이 2월 26일 갑자기 별세하셨습니다. 나도 당시 국과위 자문위원이어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갔는데 그 자리에 박기영 교수와 황우석 교수(현 에이치바이온 대표) 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언론에서 장관으로 거론되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요. ‘들은 바가 없다. 그럴 일이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당시 정부의 입각 제안은 나에겐 현실성 없는 얘기였습니다.”
그는 자서전 ‘열정을 경영하라’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공직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몸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또 지금 누리고 있고 앞으로 누릴 것이 확실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삼성전자 사장으로서 연봉 수십억원, 세계 전자 업계의 초일류라는 전도양양함과 세계를 누비며 국제적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흥미진진한 삶 등 그 모두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삼성전자가 10년, 15년 뒤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종합 계획을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받고 여러 가지 고민과 연구를 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에게는 장관직을 선뜻 수용하기 힘든 현실적인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는 2001년 3월 5일께 회사로부터 7만주의 삼성전자 스톡옵션을 받아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만약 장관에 임명되면 삼성전자에 사직서를 내야 하고 동시에 스톡옵션도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스톡옵션 행사가격은 19만원이었고 삼성전자의 주가는 29만원가량이었다. 당시 가치로 따져 70억원이었다. 130만원이 넘는 지금 가격으로 환산하면 9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중국적 문제는 정부가 고려대상에 넣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였지만 마음에 걸렸다.
진 사장이 완강히 고사하자 노 대통령이 직접 설득에 나섰다. 2월 27일 오전이었다. 진 사장 삶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