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다시 속도내는 규제개혁…암초도 곳곳에

무려 7시간에 걸친 청와대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열린지 3개월이 지났다. 정부는 끝장토론에서 수렴한 제안을 신속하게 검토해 대안을 발표했고, 부처도 개별 규제개혁 계획을 수립·공개했다.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규제개혁신문고’를 마련해 국민의 가감없는 의견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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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작업은 4월 세월호 사고, 6월 지방선거와 내각 개편 등을 거치며 다소 주춤했다. 하지만 최근 주요 이슈가 정리 단계에 들어서며 규제개혁에 다시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그동안 정부의 성과와 지적된 문제점, 향후 과제를 짚어봤다.

◇부처·지자체, 규제개혁 시동

정부 부처의 규제개혁 작업은 대체로 ‘시동을 거는’ 수준이다. 관련 계획 수립과 대응 조직 구성 초기 단계라 성과를 논하기 힘든 부처가 많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4월 ‘2014년 미래부 규제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등록규제 중 경제활동과 관계 있는 약 440개를 연내 12%, 2017년까지 최소 20% 없애기로 했다. 이후 별다른 성과는 공개되지 않는 상황으로, 최근 장관 교체가 확정되며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발빠르게 자체 ‘규제총점관리제’를 마련했다. 7월부터 시행에 나설 계획이다. 규제총점관리제는 규제개혁 국민 체감을 높이기 위해 건수 위주가 아닌 품질·중요도를 고려해 만든 제도다. 이밖에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담보대출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언급한 후 서승환 국토부 장관이 “검토하겠다”고 밝혀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가 높아졌다.

다른 부처와 비교해 산업통상자원부 규제개혁 작업은 두드러진다. 장관·차관이 직접 주재해 지난 4월 중순부터 매주 일요일 ‘규제청문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법정 인증제도 개선’을 주제로 1차 규제청문회를 개최한 후 무역·외국인투자, 경자구역·자유무역, 동북아오일허브, 신재생에너지, 산업입지 등을 주제로 6차까지 마무리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인증을 KS로 통합하기로 하고,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 의무 운영 기간을 연장하는 다양한 정책을 도출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활약도 돋보인다. 공정위는 3월 규제적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공정거래·소비자·기업거래 등 법령 전반에 걸친 개선과제를 발굴 중이다. 최근 공정거래법 관련 15개 과제 개선 계획을 밝혔다. 최저재판매가격 유지행위 일부 허용, 경쟁제한 우려가 미미한 경우 기업결합 신고의무 면제, 일정규모 미만 비상장사의 중요사항 공시의무 면제 등을 내용에 담았다.

추진 속도는 부처보다 지자체가 빠르다. 각종 규제를 발굴해 중앙부처에 건의하는 한편 조례·규칙 개정에 나섰다. 부산시는 2월 ‘규제신고센터’를 설치한데 이어 지난달 ‘민·관합동규제발굴단’을 구성했다. 지금까지 과제 46건을 발굴해 일부 개선을 완료하고 나머지 작업을 추진 중이다. 경상남도는 지난 3월 규제개혁추진단 TF를 구성해 그동안 333건의 규제개혁 과제를 발굴해 개선작업을 추진 중이다. 이밖에 울산·대전·충북 등도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걸림돌도 적지 않아…양보다 질 우선해야

규제개혁 끝장토론 후 푸드트럭 규제 완화가 주목 받았다. 규제로 푸드트럭 사업이 활성화 되지 않는다는 업계 주장에 정부는 소형 트럭을 개조해 음식을 조리·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르면 이달말부터 푸드트럭 튜닝이 허용될 전망이다.

하지만 영세상인을 지원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대기업·백화점이 푸드트럭 사업에 관심을 보이며 부작용 우려가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대기업이 푸드트럭 영업을 해 영세상인을 살리겠다는 규제개혁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만약 이런 생계형 부분까지 대기업이 나선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정부는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는 규제개혁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규제 완화에 따른 영향, 세밀한 대응책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언제든 비슷한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건수 위주’의 규제개혁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국무조정실이 올해 규제개혁 목표를 경제부처 12%, 사회부처 8%로 정해 일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 등은 기관별 특성을 고려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직 명확한 답변을 못 받은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규제는 다른 규제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국무조정실에 설명하고 있다”며 “국무조정실 목표대로 12%를 맞추려면 40여개 규제를 없애야 하는데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적 달성을 위해 형식적으로, 또는 무리하게 규제개혁에 나서는 일도 적지 않다. 최근 국무조정실은 각 부처가 감축대상 규제로 제출한 1028건을 검토한 결과 886건만 대상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142건은 단순한 조문정비, 부분 규제완화로 판단해 배제한 바 있다.

또 다른 정부 부처 관계자는 “실적 달성 때문에 ‘일단 없애고 보자’는 주장도 나온다”며 “세밀한 산정기준과 가이드라인 등 현실적인 보완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안전 등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 부문까지 완화되는 부작용 우려도 많다. 정부는 국민 생명·안전 등과 관련된 규제는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도 안전규제 강화가 규제완화와 상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후 안전 문제가 부각되며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는 상황이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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