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망 이대론 안 된다]<2>의지력·책임감·전문성 없는 추진체계

세월호 사고로 국가 재난망의 필요성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재난망 사업은 경찰과 소방서, 병원 등 재난 관련 기관이 신속하게 보고하고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는 통합지휘무선망 구축이 목적이다. 하지만 그동안 사업을 담당해온 정부 기관에서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본지가 1면과 해설, 기획면을 할애해 통합재난망 구축의 필요성을 수차례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무사안일로 일관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재난망이 12년째 표류하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의지력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추진체계를 꼽았다. 오랜 기간 논의된 사업이 대부분 그러하듯 재난망 사업도 그동안 담당 기관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

2003년 기술을 검토한 정보통신부와 최초 구축을 맡았던 행정자치부에 이어 2004년 소방방재청으로 이관된 사업은 2009년 행정안전부로 넘어갔다. 현재 사업을 맡고 있는 안전행정부에서도 재난망 추진단장이 여섯 차례 교체됐다. 잦은 책임자 교체는 누군가 책임지고 사업 추진 의지를 가질 수가 없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담당 공무원의 책임 회피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10여년 동안 예비타당성 조사가 세 차례나 진행됐다. 2004년 소방방재청으로 이관된 이후와 2008년 감사원 지적 당시, 지난해 안전행정부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도 어김없이 예타 조사가 진행됐다.

예타 조사는 500억원 이상 건설공사, 정보화, 국가연구개발 사업 등이 대상이다. 공공사업의 정책적 의의와 경제성을 판단하고 현실적 추진방안을 제시하는 게 목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일에 예타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결국 책임 회피를 위해서라고 지적한다. 사업과정에서 불거지는 잡음을 우려한 나머지 정작 ‘재난 시 안전하게 운영되는 통합지휘통신 체계 구축’이라는 사업의 본질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한 무선통신 업체 관계자는 “국민 1인당 생명에 가격을 매겨 경제성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며 “예타는 타당성 유무에 따라 사업 추진과 포기, 사업 실패 시 구실을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2012년 당시 행정안전부는 재난망 사업을 준비하며 예외조항을 활용해 예타 조사를 건너뛰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실무진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해 2월 시작된 KDI 예비당성 조사는 해를 넘겨 아직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재난망 사업에 관여했던 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나 청와대가 중심을 잡지 못해 공익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표류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재난 때마다 새로운 대응체계의 필요성이 되풀이 되는 것은 총체적 부실의 증거”라고 말했다.

담당 기관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KDI는 2004년 예타 조사 당시 투자비용 대비 효용성을 17점대로 도출했다. 일반적으로 1점대 이상이면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수치다.

반면에 2009년 예타 결과는 0점대로 나왔다. 투입 변수가 달라졌더라도 지나치게 큰 차이다. 최초 3000억원대였던 전체 투입 예산도 조사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일관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급변하는 통신 기술에 대한 대비가 안 된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관계자는 “재난망에 사용될 기술은 10년 이상을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LTE를 비롯한 상용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담당기관에는 테트라 외에는 급변하는 미래 기술까지 신경 쓸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재난망 담당 기관 변화 및 예타 조사 시기 / 자료:정부, 업계 종합>

재난망 담당 기관 변화 및 예타 조사 시기 / 자료:정부, 업계 종합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