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 사업구상 등을 위해 출국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97일 만인 17일 귀국했다. 귀국 당일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계의 눈과 귀가 이 회장의 일성에 쏠렸다. 공항에 마중 나온 삼성 임원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이건희 회장이 귀국하면서 삼성전자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부터 2분기 연속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급기야 부품 부문(DS)을 이끌고 있는 권오현 부회장은 지난 15일 전체 임직원에게 경영현황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보내 ‘삼성 반도체는 위기 상황이다. 자만에 빠지면 안 된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삼성전자의 상황론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일부 사업부가 이건희 회장이 시동을 건 ‘신경영 2.0’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시선을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새 혁신을 주창, 오늘날 글로벌기업 삼성전자를 키워낸 인물이다.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노키아와 ‘세계 전자산업의 지지 않는 태양’ 소니까지 이건희 회장의 혁신 드라이브를 이겨내지 못하고 좌초했다.
이건희 회장은 어려울 때마다 특유의 통찰력으로 문제의 맥을 짚어내고, 혁신을 주도하는 정공법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4년 전 경영복귀 당시 “지금이 진짜 위기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나가자”며 속도경영을 화두로 제시한 것은 혁신 리더로서 진면목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서울 서초사옥으로 직접 출근까지 하면서 혁신을 진두지휘한 결과 4년 전 290조원의 매출은 지난해 380조원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다시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이 97일 만에 귀국하면서 그의 해법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현재 삼성전자는 연초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2.0 화두로 제시한 ‘마하경영’이 일부 사업부에서 실현되지 않는 ‘혁신 동맥경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비전을 제시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시스템 경영’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이다.
당장 2분기 연속 영업이익 마이너스 성장은 상징적인 지표로 꼽힌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추구해온 ‘벤치마킹’과 ‘시장 추격자(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건희 회장이 2년 전부터 강조해온 ‘시장 선도자(퍼스트 무버)’ 전략이 여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갤럭시S5’ 공개 이후 끊이지 않는 ‘혁신 부재론’에 휩싸인 것이 단적인 사례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역시 또 다른 어려움으로 지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산업재해 등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에 휩싸이면서 사회적 신뢰도에서 많은 타격을 입은 상태다. 삼성전자 임원들 사이에서도 “우리가 말하면 믿어주지 않는 불신감이 팽배하다”고 토로할 정도다.
최근 백혈병 산업재해와 관련한 영화가 개봉된 데 이어 해결방안을 놓고 정치권과 시민단체와 불협화음을 겪으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더욱 확산되는 상황이다. 또 협력사 쥐어짜기, 골목상권 침탈, 국내 생산라인 해외 이전 등의 문제점들이 불거지면서 삼성전자가 오로지 수익만을 좇을 뿐 한국경제와 산업계 생태계 맏형으로서 기대만큼 기여를 못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최근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도 거치지 않고 소송으로 직행한 것을 두고 ‘언론 길들이기’라고 비판하고 나서면서 글로벌 기업의 명성에도 금이 가고 있다.
불똥은 해외에서도 번지고 있다. ‘오바마 셀카’ 마케팅 구설수에 이어 ‘스티브 잡스 죽음’ 마케팅 내막이 공개되면서 ‘반삼성’ 기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언론사 소송 사실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해외에서도 구설수는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 같은 내우외환은 이건희 회장이 한국에서 자리를 비운 석 달 남짓한 시간에 집중적으로 불거졌다. ‘이건희 회장 없는 삼성전자는 생각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귀국에 삼성전자 임직원이 잔뜩 긴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내부적으로도 계열사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한계에 다다른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해법 찾기에 안간힘이다. 이건희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셈이다. 혁신 리더 이건희 회장이 이 같은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풀어갈지 일거수일투족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표]이건희 회장 해외 체류 기간 발생 현안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