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산업에서 대표적 ‘갑’과 ‘을’ 논란을 낳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저작권 문제를 정면 돌파한 사업이 등장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원장 김명룡)이 진행하는 방송프로그램 제작 지원 사업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은 최근 방송프로그램 제작지원 사업을 공고하고 심사에 착수했다. 방송통신발전기금 가운데 137억원을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지원하는 사업이다.
업계의 관심이 쏠린 이유는 방송사가 독점하던 저작권을 외주제작사와 나눠 갖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우대하고 저작권 배분을 협력 제작사가 더 많이 갖도록 유도했다.
일례로 방송사가 지원 사업에 30%를 투자하고 제작사가 20%를 투자해도 제작사에 60%의 저작권을 주는 방식이다. 방송사, 제작사의 투자 부담 비율에 따라 제작사는 최대 90%까지 저작권을 가질 수 있다.
저작권 공동소유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KCA 관계자는 “저작권 공동 소유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는데도 컨소시엄이 전년 대비 두 배 늘었다”며 “선정된 후에도 중간과 최종 점검으로 계약 이행 여부를 점검해 지원금 회수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방송사와 제작자, 배우로 이어지는 갑을 관계를 재정립하는 표준계약서 첨부도 명시했다.
그간 방송사는 외주제작사가 투자한 점을 인정하지 않고 저작권 전반을 독식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내 방송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의 70% 안팎을 외주제작자가 책임지는 현실에서 이들의 경영상황을 악화시키는 최대 요인으로 꼽힌다.
외주제작사들은 이로 인해 드라마가 성공해도 수익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모순된 상황에 처해 왔다. ‘아이리스’ 제작자인 김종학 프로듀서(PD)를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원인도 이 구조가 한몫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제작사들은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드라마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고 외주비중이 높은 오락과 버라이어티 쇼는 2차 판권에 소외되면서 사정이 더 열악하다”며 “KCA 지원사업으로 해묵은 방송물 저작권 논쟁이 실마리를 찾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