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BIZ+]무르익는 국내 컴퓨팅 산업 육성

서버와 스토리지 등 국내 컴퓨팅산업 자립을 위한 움직임이 민관에서 나타나고 있다. HP와 델 등 다국적기업들에 밀려 설자리를 잃은 국내 컴퓨팅산업이 부활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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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와 스토리지 등 국내 컴퓨팅 장비 산업 발전을 위해 지난 1월 한국컴퓨팅산업협회가 출범했다. 국내 컴퓨팅 장비 제조사들이 뭉쳐 협회를 만든 건 처음이다. 사진은 최재유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방송정책실장(앞줄 왼쪽 다섯번째)과 정성환 한국컴퓨팅산업협회 초대회장(앞줄 오른쪽 세번째) 등 협회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95% 대 5%

우리나라가 IT강국을 내세우고 있지만 서버·스토리지 같은 하드웨어산업의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약 1조5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서버와 스토리지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5% 안팎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나마 서버가 5% 정도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수준이며, 데이터 ‘곳간’인 스토리지는 사실상 국내 기반이 전무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같은 쏠림은 민간과 공공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어져왔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우현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정부통합전산센터의 경우 외산 서버 비중이 95%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현재 IT 시장에서 하드웨어를 비롯한 국산 장비가 활용되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면서 국산 HW 활용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

이런 산업 지형은 인위적이 아닌 자연스런 시장 경쟁에 따른 결과다. 국내 최대 IT기업인 삼성전자도 2000년대 중반까지 서버 사업에 나섰지만 HP·IBM·델 등 글로벌기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지금은 철수한 상태다. 대신 20여개 미만의 중소기업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규모의 경쟁에 큰 차이를 보이면서 국내 서버산업은 단순 제조에 불과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이 틀을 깨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감에, 또 IT 자주권 확보가 필요하다는 민관의 고민이 일치하면서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이다.

민간 분야에서는 먼저 국내 중소기업들이 뭉친 것이 대표적이다. 이트론·이슬림코리아·태진인포택 등 국내 20여개 HW업체를 중심으로 ‘한국컴퓨팅산업협회’가 출범했다. 컴퓨팅 장비 관련 협회가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협회 출범과 동시에 활동을 시작했다.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에 서버와 스토리지 지정을 신청한 것이다.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 국내 제조 기반을 두고 있는 기업만 공공기관에 납품할 수 있어 입지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협회 초대회장을 맡은 정성환 이트론 대표는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도, 국내 정부도 포기한 컴퓨팅 장비산업은 그동안 중소기업들이 기술과 시장을 이어왔다”며 “1~2년 안에 성과를 내기보다 장기적으로 중소기업간 협의 체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컴퓨팅산업 육성에 가세했다. 2014년 정보통신·방송 기술진흥 시행계획에 ‘초절전 마이크로서버 개발 사업’을 담았다. 정부 주도의 서버 개발은 지난 1989년 ‘타이콤’ 프로젝트 출범 이후 처음이다. 타이콤은 정부가 앞장서고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전자), 현대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공동으로 개발해 상용화한 국산 주전산기이다. 초절전 마이크로서버 개발 사업은 지난 2월 확정돼 이달 13일 지원 접수까지 마쳤다.

◇걸음마 뗄까

국내 컴퓨팅업체들은 정부의 육성책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경쟁력 회복을 고심하던 상황에서 정부가 육성의지를 보이며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지정도 현재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돼 고무적이다.

그러나 국내 컴퓨팅산업 육성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서버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게 된 건 그 만큼 경쟁력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이라며 “이를 중소기업들이 뒤집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기업들은 이런 시각을 반박했다. 규모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난 10년 넘게 컴퓨팅산업을 이끈 기술과 노하우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정성환 한국컴퓨팅산업협회장은 “페이스북이나 네이버 등을 보면 범용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기보다 자체적으로 서버를 설계해 제조사들에 공급받는 형태로 가고 있다”며 “냉각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장비를 개발하는데 집중한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일단 총성은 울렸다. 출발선에서 떠난 국내 컴퓨팅산업 육성 노력들이 과실을 거둘지 주목된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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