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콘텐츠산업 10-10-10 체제를 넘어서자

알맹이라고 써야 하나, 알갱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냥 내용물이라고 기술해야 할 것인가. 콘텐츠가 정책과 법제화의 대상이 되면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했던 기억이 새롭다. 버스를 버스로 부르고, 코너킥을 코너킥으로 부르는 것처럼 수입된 그대로 콘텐츠도 우리말로 번안되지 않은 채 생활용어가 되고 법률용어가 되었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은 ‘어떤 전자기기, 플랫폼, 테크노롤지도 좋은 콘텐츠가 없으면 빈 그릇에 불과하다’고 설명하는데, 한 단어로 이런 의미를 담는 한글 용어를 찾거나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1940년대 세계 2차 대전 무렵 국력의 상징은 항공모함이나 폭격기 같은 군사력이었다. 1960년대 전후 복구가 본격화되자 건설이나 무역이 중요해 지면서 상징은 경제력이 되었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1980년대는 정보화를 중시했다. 성숙해진 정보화 사회는 문화력의 뒷받침 없이 더 나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력의 아이콘이 하드 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로 진화해 온 것이다.

세계의 산업구조 또한 요동쳐왔다. 약 3세기 전 촉발된 영국의 산업혁명 이래 30년 전까지만 해도 산업생산이나 담론의 주역은 기계화였다. 그런데 21세기의 승부처는 문화산업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지금 세계는 콘텐츠 폭풍노도에 휩싸여 있고, 콘텐츠는 신산업혁명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제3의 천년기가 시작한 지 겨우 10년이 지난 2010년 세계 콘텐츠 산업시장은 이미 1조3566억달러였다. 기계화의 대표인 자동차산업의 1조2000억달러나 IT산업의 80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우리사회의 경제 아이콘도 변해 왔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자본이 핵심적 동력으로 부상했다. 철강, 자동차, 선박을 생산하며 거대장치산업이 상징이 되는 산업경제시대가 열렸다. 이어 정보화시대가 전개되면서 지식과 정보가 중요해졌고, 반도체와 IT가 국가주력산업이 된 지식경제시대로 진입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창조력과 상상력이 바탕이 되는 감성사회로 발전하면서 콘텐츠와 문화서비스가 커가는 창조경제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제러미 러프킨의 말처럼 산업생산에서 문화생산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무역에 85% 이상을 의존하는 우리 경제의 관건은 교역의 내실화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는 1조달러를 넘는 세계 8위의 무역대국이지만 동시에 세계 6위의 서비스 수지 적자국가이다. 국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필수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교육이나 의료서비스와 같은 내수산업은 국내적 제약이 너무나 많고, 파급효과가 큰 금융서비스산업은 대규모 자본과 축적된 경험이 부족해 급속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서비스산업 강화의 핵심 카드는 콘텐츠산업이 될 수밖에 없으며, 고용 없는 성장시대의 대안이기도 하다.

세계 콘텐츠산업에서 우리나라 비중은 2.5%가 안 된다. 우리 콘텐츠산업은 미국의 14분의 1 그리고 일본의 4분의 1보다 작다. 역설적으로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철강, 자동차, 반도체, IT 등 분야에는 매년 국가재정의 2∼7%가 지속적으로 투입되고, 콘텐츠 분야에는 겨우 0.2% 정도만 투입돼왔다. 이 같은 관성적 불균형 분배를 고치면 콘텐츠산업은 서비스산업 체질개선의 주역이 될 것이다.

우리 콘텐츠산업은 10-10-10체제이다. 약 10만개의 콘텐츠기업이 있으나, 매출 10억원 미만이 94.1%이며, 종사자 10명 미만이 94.5%이다. 이들의 최대 애로는 자금절벽이다. 담보력이 약하고 영세한 기업들이 뭉쳐 금융난관을 돌파하고자 작년 10월 콘텐츠공제조합을 만들었다. 모처럼 불붙은 자조자립의 새로운 문화금융이 탄력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국가적 도움이 필요하다. 정부와 대기업들이 출자 출연에 나서며 이를 돕는 조세특례 등 입법지원은 콘텐츠산업을 강화하고 경제재도약을 통해 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영세기업들의 뭉친 힘으로 10-10-10 체제를 넘는 신화를 만들자.

김종민 콘텐츠공제조합이사장(전 문화부 장관) kimzong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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