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에너지 전환과 연구 정책

2022년까지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을 둔 에너지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 독일은 이를 실행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가격이 비싼 재생가능에너지 기술 설비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시장 형성, 화석 연료의 가격 상승을 야기하는 각종 규제, 관련 에너지 기술 연구 등의 정책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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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시장 정책이나 규제 정책은 재생가능에너지의 가파른 성장과 더불어 주목받았지만 독일 연방 정부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연구 정책은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했다.

지난해 발표된 `친환경적이고 신뢰할 만한, 그리고 지불 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연구`라는 에너지 연구 프로그램은 연구 정책에 새로운 시사점을 주고 있다. 에너지와 연관한 기초 연구와 기술개발 지원 정책을 포괄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독일 연방 교육연구부가 단독으로 마련한 것이 아니다. 연방교육연구부를 비롯해 경제기술부, 환경부, 농림소비자부가 공동으로 기획, 설계한 통합 연구 정책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중앙집중식 화석 에너지 체제에서 분산형 재생가능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효율 높은 태양전지 기술 개발과 같은 기존 개별 기술 개발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 전지 효율을 높이자면 관련 기초 연구가 선행돼야 하고 연구 결과가 기술 상품으로 사용되려면 연방교육연구부 지원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통합 연구 정책 전략은 `에너지 저장 기술` `태양건축-에너지 효율 도시` `전력망` 통합 연구 지원 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졌다. 저장이나 효율 기술에 필요한 기초 연구를 연구교육부에서 담당하고 관련 응용 연구와 상품화 전략은 환경부와 경제기술부에서 담당한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부서 간 정책 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구-개발-상품`이라는 전통 기술 개발 정책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기초 연구와 상품화 전략이 동시에 시스템 차원에서 통합되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이 통합 지원 프로그램이 계획되고 있다. 아울러 도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화뿐만 아니라 재생가능에너지를 활용하는 대중교통 활성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태양건축-에너지 효율 도시`는 그간 개별 부처에서 이뤄지고 있던 개별 에너지 효율 지원 정책을 통합, 정책 효율성과 통합성을 높인 것이다.

통합 연구 정책에는 부서 간 긴밀 협력을 지원하는 정책도 포함됐다. 경제기술부에 `에너지연구정책 협력 플랫폼`을 설치하고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부서 간 상시적이고 긴밀한 정보 교환과 소통이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플랫폼은 프로그램의 개별 프로젝트가 프로그램 목표에 맞춰 진행되고 있는지, 프로젝트 간 상충은 없는지를 상시 점검할 수 있다.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 간 조응, 연구와 기술 시장 간 괴리 등 문제도 조정되도록 계획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녹색성장 정책 영향으로 에너지 효율화, 재생가능에너지 기술 개발 등 에너지 기술 개발 정책이 잇달아 입안, 시행됐다.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주요 기술 대상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집중 지원으로 기술 개발에서 상품화에 이르는 종합 지원이 이뤄진다. 그러나 국내 에너지 기술 개발 정책은 여전히 개별 부처 정책에만 머물러 있고 통합 정책적 관점은 결여됐다. 에너지 생산, 공급, 저장 기술을 아우르는 통합 에너지 시스템 관점 정책 설계도 미흡하다. 발전 기술에 지원이 집중되면서 재생가능에너지와 관련된 분산형 전력망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등 불균형도 심각하다. 기술 개발 정책도 여전히 `연구-개발-시장`의 전통적인 선형 기술개발 정책에 머물러 기초 연구와 기술 개발, 시장 정책의 통합 기획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기후 변화 대응과 안전성을 확보해줄 수 있는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은 기초연구와 기술 개발, 시장 형성 정책이 기획 단계부터 통합 설계돼야 짧은 시간 안에 화석 에너지 대체 기술로 성장할 수 있다.

현재 실행 중인 우리 에너지 기술 개발 정책이 에너지 시스템 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통합 설계되고 있는지, 정부 부처 간 시너지 효과를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되고 있는지 등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점차 심각해지는 에너지 문제에 대응하려면 연구, 기술 개발 정책의 혁신 역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박진희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jiniiib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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