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한국HP·한국MS 등 유한회사, 회계투명성 우려…세금회피 막기 위한 외감법 개정

다국적 IT기업은, 유한회사 선호…왜?

2001년 매출 1조2905억원을 기록한 한국휴렛팩커드주식회사(한국HP)는 지난 1984년 8월 주식회사로 설립했다 2002년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이후 한국HP는 국내서 거둔 매출액과 순이익을 공개하지 않는다. 2003년 매출 2330억원을 기록한 한국마이크로소프트도 2006년 유한회사로 전환한 후 매출 공개를 하지 않는다. 정부는 유한회사로 전환한 다국적 기업들이 외부감사법을 적용 받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 국내서 거둔 수익을 해외로 유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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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유한회사로 영업 중인 상당수 다국적기업의 회계장부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이 적극 추진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으로 `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개정 작업을 마무리, 3월 중 상정할 예정이다.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도 유한회사 투명성 강화를 위한 외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한회사, 외부감사 사각지대…회계 불투명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일반 주식회사와 동일한 규모라 하더라도 유한회사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회계제도를 적용받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규제 차익이 발생해 형평성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부감사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유한회사는 회계처리에 있어 상법상 감사인을 두고 회계감독을 하게하는 조항이 있지만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 외부감사를 받을 의무가 없으며 회계처리시 적용 회계기준도 임의선택이 가능하다. 유한회사는 소수 출자자 간의 폐쇄적 기업운영의 편의성을 위해 도입된 것이지만, 2011년 상법 개정에 따라 사원 수와 지분양도 제한이 폐지돼 주식회사와 유사하다.

이로 인해 HP·MS·오라클 등 상당수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법인을 유한회사 형태로 운영한다. 지난 2012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의 유한회사가 425개에 이른다. 1조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유한회사도 7개에 이른다. 한국HP도 이중 하나다.

국내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외감법의 허점을 이용, 유한회사로 설립하거나 전환해 기업공시 의무를 회피한다. 이로 인해 수익규모를 은폐해 역내탈세 수단으로 활용할 우려가 높다. 실제 상당수 다국적 기업들은 해외에 있는 본사에 특허권 등의 명목으로 상당금액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HP는 지난 2001년 HP미국디비전에게 1508억원의 상품매입 비용을 지급하고, 1572억원에 해당되는 채무도 보유하고 있다. 다국적기업 한 관계자는 “상당수 기업이 특허비 등의 명목으로 수익의 상당부분을 해외 본사에 지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국회, 유한회사 외감법 적용 추진

외감법 허점을 이용한 다국적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두 팔을 걷어 붙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1년 한국형국제회계기준(K-IFRS)을 도입하면서 상당수 회계 투명성이 높아진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유한회사 등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회계 개혁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회계투명성이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먼저 주식회사의 경제적 실적이 비슷한 유한회사 대상으로 주식회사에 준하는 회계규정을 적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외감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외감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 시행되면 적용 대상이 유한회사로 확대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3월 중 개정안을 국회 상정하고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은 시행령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당초 자산총액 120억원 이상 유한회사를 외감법 적용 대상으로 포함시킬 계획이었으나 해당 회사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자산총액을 5000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산총액 120억원 이상의 유한회사는 1500개다. 이에 대해 회계 전문가들은 “초기에는 적용 받는 유한회사 기준을 높게 정하더라도 단계적으로는 기준을 낮춰 대부분의 유한회사가 외감법을 적용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유한회사들이 외감법을 적용받으면 사업보고서 등 실적을 공시해야 한다. 올바른 회계 작성이 이뤄졌는지에 대해 외부 감사도 받아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공시 대상이 되면 국내 법에 따라 세금회피 등의 행위가 있을 경우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감법 개정안을 의원발의한 김태호 의원은 “규모가 큰 유한회사 대상으로 회계감독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국가가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영국 등 대부분 유한회사, 외감법 적용

대부분의 해외에서는 외부감사 대상에 유한회사를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은 주식회사와 유한회사 대상으로 외부감사를 적용한다. 영국은 주식회사, 유한회사와 함께 무한책임회사, 공동이익회사도 외부 감사 대상에 포함, 회계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독일도 유한회사를 포함해 주식회사, 합자회사, 합명회사가 대상이다. 호주도 유한회사를 포함 모든 공개회사와 비공개회사에 대해 외감법을 적용한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모든 주식회사와 유한회사 대상으로 외부감사를 시행한다. 종업원 수 20명 이하, 500만싱가포르달러 이하의 기업에 대해서는 예외 적용한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유한회사도 외부 감사 대상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유선일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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