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뱀(黑蛇)이 가고 푸른 말(靑馬)이 왔다. 2014년은 넓은 들판을 달리는 푸른 말의 해다. 모두가 말굽으로 힘차게 땅을 차고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모든 해가 그렇듯 2014년에도 이름이 많다. 푸른 말의 해이면서 동시에 갑오(甲午)년이다. 역사 수업시간에서 들어 익숙한 갑오개혁(1894년). 같은 이름의 해가 120년 만에 돌아왔다.
매번 새해를 맞으면 해당 연도의 또 다른 이름에 관심이 쏠린다. 각각 이름이 특정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한 해 운세를 점쳐볼 수 있다. 푸른 말, 청마는 강인함과 행운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상상 속 동물이지만 기운이 넘치는 한해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 터다.
#청마의 해를 만드는 원리는 12지간에서 온다. 정식으로는 10간(干) 12지(支)다. 10간은 천간이라고도 하며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로 표현된다. 12지는 각각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다. 이 10간과 12지가 하나씩 합쳐서 연도 이름을 만드는데, 올해는 10간의 첫 번째인 갑과 일곱 번째 12지인 오가 합쳐져 `갑오`년이 됐다. 중국 `월령장구`라는 책에는 `대요`라는 한나라 사람이 10간과 12지의 최소 공배수를 이용해 60갑자를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12지가 12종류의 동물(상상의 동물 포함)을 상징한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쥐(자), 소(축), 호랑이(인), 토끼(묘), 용(진), 뱀(사), 말(오), 양(미), 원숭이(신), 닭(유), 개(술), 돼지(해)로 사람마다 태어난 해에 받는 `띠`와 같다.
10간은 두 개씩 묶어 하나의 색깔을 나타낸다. 파랑(갑·을), 빨강(병·정), 노랑(무·기), 하양(경·신), 검정(임·계) 등으로 오행을 상징한다. 2014 갑오년은 `파랑+말`이 합쳐서 청마의 해가 됐다.
#10간과 12지를 단순히 한 해 운명을 점치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길 수 있지만, 일부 과학계에서는 10진법과 12진법이 교묘히 합쳐져 60진법을 만든 `과학적 원리`에 주목한다. 특히 12지는 해의 구분뿐 아니라 달(月)과 날(日), 시(時)를 구별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과거부터 우리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12지를 과학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조선시대 대표 과학자 `장영실`이다. 1434년(세종 16년) 장영실은 이천, 김조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 해시계를 만들었다. 바로 `앙부일구`다. 반구형에 대접 형태로 만들어진 앙부일구는 시침 역할을 하는 송곳의 그림자로 시간을 표시했다. 태양의 궤적에 따라 시간을 나타냈는데, 그 시각에 맞는 12지를 그려서 글을 모르는 백성도 지금이 어느 때인지 가늠하게 했다. 쥐는 23시에서 1시까지, 소는 1시부터 3시까지, 호랑이는 3시부터 5시까지를 의미하며 12지 순서대로 2시간씩의 시간을 나타낸다.
앙부일구는 달력 역할도 했다. 태양은 계절에 따라 남중고도가 달라진다. 겨울에 햇빛이 길게 들어오고 여름에는 좀 더 수직으로 비춰지는 배경이다. 앙부일구는 이 원리를 이용해 24절기를 표시했다.
세종은 혜정교와 종묘 앞에 앙부일구를 설치해 공중 시계 역할을 하게 했지만 유실돼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18세기 제작된 휴대형 앙부일구는 보물로 지정됐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