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분법의 함정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 이후 우리 산업은 2차, 3차를 거쳐 6차 5개년 계획을 지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바로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금의 우리 기업들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우리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으로 그 위상을 확고히 했다.

우리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산업 파이 키우기`가 지속되면서 발생한 대기업 쏠림 현상에 대한 반대급부다. 양극화 역시 성장 위주의 경제운용 정책의 결과물이다. 이후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정책 기조를 바꿔 산업계의 새로운 플레이어인 신생 중소기업 수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육성이 산업 정책의 절대 가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선거 때마다 대권 후보들은 `중소기업 키우기`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기업은 규제의 대상`이고 `중소기업은 보호의 대상`이라는 이분법이 나온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몸은 이미 성인이지만 마음은 어린아이에 머물고 싶은 `피터팬 증후군`이 우리 중소기업계에 만연하게 된 배경도 바로 이분법 공식 때문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는데 육상선수와 함께 뛰라고 하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육에서 초등, 중등, 고등학교 체계를 갖추고 있듯이 기업계에도 최소한 성장 단계별 룰이 존재해야 한다. 중견기업 육성이 경제계 화두로 떠오른 것도 `대-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의 오류를 바로 잡아 성장잠재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이번 정부가 중소기업과 함께 중견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기업의 성장사다리 구축은 건전한 산업생태계 구축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각에서 `대기업-중소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중견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이분법적` 논리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면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갑자기 대기업은 제외해 놓고 `중소-중견`을 또 다른 `이분법`으로 잣대를 들이대면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중견기업 육성 정책이 나온 배경을 다시 떠올려보자. 중소기업이냐 대기업이냐는 극단적인 구조에 중견기업 카테고리를 둠으로써 기업 성장 규모에 따라 최대한 세분화된 맞춤형 정책을 펼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중소기업 범위에 대한 논란이 존재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사다리 구축을 통해 대기업 후보군을 확대하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중견기업 카테고리를 좀 더 세분화해 `피터팬증후군`을 줄여나가야지, 중견기업 정책 자체에 제동을 걸 사안은 아니다.

처음부터 모두가 100%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은 없다. 중견기업법도 마찬가지다. 산업은 큰 흐름이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중소기업 정책을 꾸준히 펴 왔고, 그 과정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성장 단계별 중견기업 육성 정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중견기업 정책은 중소기업계의 `피터팬증후군`을 줄여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안주하려는 욕구가 큰 기업이 아니라, 성장하려는 욕구가 큰 기업을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