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첨단 전자소재 국산화 노력 주춤
일본 전자소재업체들이 안방을 떠나 한국 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일이다. 엔저를 등에 업고 세계 최대 전자 고객사가 밀집한 한국 시장에서 파상공세를 펼친 덕분이다. 자국 내 전자산업이 어려워진 상황을 해외에서 타개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국내 기업들의 첨단 전자소재 국산화 노력이 주춤해졌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전자소재 시장에서 최근 일본 업체들의 점유율이 급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엔저 영향이 크다.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하면 엔화 가치가 1년 만에 20% 이상 떨어졌다. 품질을 감안하면 국산 제품과 가격 차이를 만회할 수 있는 수준이다. 주로 경쟁해온 미국·독일 기업들과 비교하면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진다.
특히 일본 소재업체들은 자국 내 전자산업이 무너지면서 지난 수년간 한국 시장에 공들인 결실을 톡톡히 맛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데미쓰코산이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시장에서 가장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데미쓰코산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파주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전자수송층(ETL), 청색 발광체 등 생산하는 제품군이 많아 올해 OLED 소재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업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주로 LG디스플레이에 공급했지만, 삼성디스플레이와 차세대 제품 개발에 들어가 있다.
액정을 비롯한 LCD 소재를 주로 공급해 온 일본 치소의 성장도 주목된다. 치소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8세대 LCD 라인에 주로 공급하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액정의 전통 강자인 독일 머크를 제친 상태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청색 발광체(도판트) 제2 공급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도판트는 보조재 역할을 하는 소재로 사용되는 양은 적지만 부가가치는 더 높다. 이어 치소는 LG디스플레이와도 OLED 소재 공급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시대가 열리면서 일본 우베코산이 주목받았다. 우베코산은 삼성디스플레이와 합작해 SU머티리얼즈라는 폴리이미드(PI) 합작사를 설립했다. 또 다른 일본 PI 업체인 가네카는 LG디스플레이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스미토모화학은 국내 전자소재 시장에서 일본 기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LCD 컬러필터 사업이 줄었지만 터치스크린패널(TSP)로 다시 성장세를 그리고 있다. 지난 3월에는 3000억원의 추가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TSP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
TSP의 핵심 부품인 투명전극필름 분야도 일본업체가 강세다. 최근 닛토덴코는 인듐주석산화물(ITO) 가격을 종전보다 절반 이하로 내렸다. ITO 필름을 독점하던 이 회사는 한국 업체들이 국산화에 속속 성공하자 가격 인하를 무기로 고객사 단속에 나섰다. 역시 엔저 영향이 컸다.
반도체 포토레지스트 공급 업체 TOK는 인천 송도에 올해 제조 시설을 세우는 등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193㎚ 불화아르곤(ArF) 노광(리소그래피) 공정용 포토레지스트는 업계 1위다. 나믹스는 반도체 후공정, 인쇄회로기판(PCB) 본딩용 보호소재 전문 업체로, 언더필(Underfill) 시장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히타치화성 역시 삼성전자를 주고객사로 다이본딩필름 시장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올해 일본 소재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 엔저 덕을 많이 봤다”며 “더불어 국내 고객사들도 원가 절감 혜택을 봤지만 상대적으로 국산화 노력은 시들해진 편”이라고 분석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