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가 150년 만에 처음으로 내년에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지만, 관련 예산의 절반 이상이 삭감되는 등 비상식적인 예산당국의 처사에 자칫 국제행사 자체가 동네잔치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세계 각국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명성에 잔뜩 기대를 모으는 상황에서 `반쪽짜리` 행사로 치러지게 되면 국가 브랜드는 물론이고 한국 ICT 제품 신뢰도도 되레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7일 부산시와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ITU 전권회의 예산 294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52억원이 무더기로 잘려나가면서 결국 142억원만 반영됐다. 부산시는 특히 지방도시에서 열리는 행사라고 차별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삭감된 내역은 △회의장 및 주변 통신인프라 구축 15억7000만원 △ICT 전시회 및 콘퍼런스 30억원 △미래 신기술 체험관 12억8000만원 △스마트 한류 행사 18억4000만원 △ICT 신기술 시범지구 조성 27억원 등이다.
회의장 통신인프라 예산은 지난번 ITU 행사부터 공식화된 `종이 없는(paperless) 회의`를 위한 필수시설(유무선 네트워크 및 웹캐스트 등) 구축비용이다.
ICT 전시회 및 콘퍼런스와 미래 신기술 체험관, ICT 신기술 시범지구 등은 한국의 앞선 ICT산업을 세계에 홍보하고 우리나라 제품의 해외 진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쪼그라든 예산으로 지난 대회보다 못한 행사가 불가피해 홍보는커녕 오히려 대외 이미지가 실추되는 역효과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대회를 유치한 부산시 관계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유치하고도 경기장이나 관련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과 똑같다”며 “열악한 행사가 곧바로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그동안 쌓아올린 ICT 강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ITU 전권회의 예산이 반토막난 것은 기획재정부가 어려운 세수를 감안해 내년 행사 관련 예산을 일률적으로 삭감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빚어졌다. 다른 행사 예산을 삭감하면서 ITU 전권회의만 줄이지 않으면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이 형식 논리에 너무 치우쳐 행사의 중요도나 정성적 평가가 간과됐다는 지적이 높다.
4년마다 열리는 ITU 전권회의에는 세계 ICT 전문가들이 총집합해 향후 4년간 세계 ICT 관련 정책과 표준을 확정하고 앞선 ICT를 공유하는 글로벌 축제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이 ITU 5대 고위직 가운데 하나인 표준화총국장 후보까지 배출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못지않게 경제 파급효과도 커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면 7000억~8000억원의 수익이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에서 반토막난 예산을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상임위를 중심으로 증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ICT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ITU 행사는 반세기 안에 한국에서 다시 열리기 힘든 글로벌 행사라는 점에서 국회가 대정부 질문이나 상임위 활동 등을 통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ITU 전권회의를 우리나라 ICT산업뿐만 아니라 창조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