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녹색성장 우월적 지위를 유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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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혀 둘 게 있다. 나는 녹색성장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넘쳐나는 `녹색성장`이라는 용어를 스쳐지나가는 유행 같은 존재라고 한 적도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정부 시절, 화두는 녹색성장이었다.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나온 저탄소 녹색성장은 순식간에 국가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당시 4년 후를 예상했다. 녹색성장이란 단어가 소리 없이 사라질 게 뻔했다.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자 녹색성장이란 단어는 뒤안길로 사라졌다. 심지어 새 정부가 녹색 지우기에 돌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녹색성장이라는 단어가 빠진 자리를 `창조경제`라는 말이 대신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해온 일 가운데 녹색 아닌 게 없다. 기후변화 문제를 연구하는 조직이 있었다. 에너지자원 정책을 세우고 육성하는 부처도 있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전자업계는 절전형 반도체에서부터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안 한 게 없다. MB정부 들어 녹색성장을 강조하다보니 정책이나 연구과제에 녹색성장·그린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정부가 녹색성장을 강조하면서 에너지 자원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동력이 있을 때 이를 최대한 활용해 녹색성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었다. MB정부 때 해놓지 않으면 모처럼 얻은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폭넓고 추상적이다. 세상에 창조경제 아닌 것이 없다. 모든 정책 앞에 창조경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난 정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역시 4년 후에는 녹색성장과 같은 길을 갈 것이 걱정된다.

30일 오랜만에 녹색성장위원회가 열렸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바뀐 후 처음 열린 회의다. 새 민간위원 위촉과 함께 녹색성장 관련 국가계획 및 추진현황, 전기자동차 개발 및 보급방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녹색성장에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앞서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 KT사옥 1층에 있던 녹색성장체험관이 문을 닫았다. 이 공간은 앞으로 미래창조과학부 `청년 경제교류 공간`으로 쓰인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국정 어젠다가 바뀌는 것이 당연하지만 녹색 속에 숨어 있는 기후변화문제와 에너지·자원·IT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화두다. 정부가 바뀌고 어젠다가 바뀌더라도 소홀하게 다룰 정도로 내다 버릴 사안이 아니다. 그동안 해외 여러 나라와 맺은 녹색성장 관련 협력 약속은 앞으로도 지켜야 한다.

국내에서는 녹색성장이라는 표현이 금기어 수준으로 전락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어젠다다. 최근 덴마크에서 열린 `글로벌녹색성장포럼`은 지역을 바꿔가면서 지속될 것이다. 해외 여러 나라는 우리나라와 녹색성장 동반자 협력을 맺고 싶어 한다. 우리는 버리려고 애쓰는 녹색성장을 국제사회는 벤치마킹하려 한다.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나 녹색기후기금(GCF)은 우리나라 주도로 설치된 국제기구다. 우리가 주창한 녹색성장은 세계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발전모델로 주목을 받는다. 최소한 녹색성장으로 만들어진 국제사회 우월적 지위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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