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스마트(Smart)`다. 소비와 경영, 날씨, 회의 등 무형의 단어에서부터 휴대폰, 자동차 등 유형의 제품에 이르기까지 말의 첫머리에 스마트를 붙이면 무엇인가 혁신을 꾀하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 스마트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쓰인 것은 스마트 학생복이다. 이후 40여년이 흐른 지난 2008년 스마트폰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세상은 `스마트 혁명` 속에 빠져들고 있다.
산업에도 적용됐다. 똑똑한 전력망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정부는 전력망이 스마트해지면 전력계통을 지능적으로 관리해 사용량과 요금에 대한 정보를 통해 합리적 전력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며 지난 2008년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 기대가 컸던 만큼 걱정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에너지 분야의 대운하 사업으로 불렸지만 적정성과 타당성 등 전반적인 문제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숙제가 산적했다.
전력과 ICT의 융합산업임에도 관계기관은 전력산업 위주로 로드맵을 구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통신과 IT업체의 참여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력 재판매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요자원관리 시장의 민간 참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SKT가 조직을 축소하고 KT가 발만 담그는 현 상황만이 연출될 뿐이다. 제주도 실증단지 사업을 통해 ESS, EMS 모델은 검증됐지만 스마트미터(AMI), 전력수요관리 시장은 크게 진전된 것이 없다. 스마트그리드사업단의 정체성도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 사업만을 대행할 뿐 사업단 스스로 주도적인 사업추진 이력이 없다.
전력과 통신의 융합을 위해 조단위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지만 이는 어떤 형태로든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국민적인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전기요금에서는 실시간으로 가격정보를 제공한다 해도 기업과 가정이 이에 맞춰 수요를 조절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월 7만원(4인 가구 월평균 전력소비 400㎾h)으로 불편이 없는데 굳이 20만원이 넘는 스마트미터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
스마트그리드는 기술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기술이 아닌 방법론에서 사업의 오류를 찾아야 한다. 향후 스마트그리드가 산업계와 전국의 산업단지 위주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가정에서 10을 줄이느니 산업계에서 1을 감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각 가정의 효율적인 전력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면 사업은 자칫 산으로 갈 수 있다. 이는 국민차로 불렸던 티코에 3000CC급 벤츠엔진과 광폭타이어를 채용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10여년전 정책실패가 가져온 사회적 비용을 경험했다. CDMA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추진한 동기식 IMT2000 사업자 선정정책은 대형 통신사업자의 불필요한 기회비용 지출, 국민 혼란, IT기업의 경제적 피해를 낳게 했다. 당시 사업을 포기했던 이동통신사업자 대표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을 이유로 CEO자리에서 물러났다.
어정쩡하게 중간에 끼인 기업은 위험을 안게 되듯이 어정쩡한 정책도 실패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스마트그리드는 분명 혁신적인 기술이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을 읽지 못하는 정책은 기업과 시장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 혁신`이 수용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을 때다.
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