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대한 마녀 사냥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게임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게임을 사회악을 조장하는 악의 화신으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최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 연설에서 “이제는 이 나라에 만연된 이른바 4대 중독, 즉 알코올, 마약 그리고 도박, 게임중독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는 개인과 가정의 고통을 이해, 치유하고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해야 합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게임을 성토했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 게임은 난데없이 중세의 마녀로 단두대의 반역자로 취급받는다.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한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문화선진국인 미국, EU, 일본은 물론이고 종교적 규율로 문화 소비에 있어 규율이 강한 이슬람 국가조차도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른바 정보 강국, 문화콘텐츠 선진국가라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려고 한다.
국가 정책에서 균형 있는 시각을 견지해야 하는 여당 대표의 발언이 가장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게임콘텐츠에 이토록 저주에 가까운 발언을 했으니, 문화 시곗바늘이 중세의 암흑천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더욱이 문화콘텐츠 산업 진흥을 위해 게임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박근혜정부의 약속과는 상반되게 집권 여당 대표가 게임콘텐츠에 대해 이토록 악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심각한 국가 정책의 혼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당장 같은 여당의 중진 의원인 남경필 의원조차도 반기를 들고 나섰다.
물론 게임에 중독현상이 전혀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다. 또 미디어에서 보도된 대로 게임이 끔찍한 가족 살인 사건에 연루된 단초가 되었다는 점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우리 문화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게임콘텐츠 전체, 특히 인터넷 게임전체를 중독물질로 규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판단이다.
가족 간의 불화와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이 게임 콘텐츠뿐이겠는가. 학교, 학원에서부터 텔레비전, 모바일, 인터넷, 그리고 심지어는 명절, 명품, 결혼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실제로 불미스러운 사건의 수만 놓고 보면 게임보다 앞서 열거했던 것들이 가족과 개인을 파괴하는 더 큰 주범들일 것이다. 황 대표의 논리대로 하면 텔레비전, 모바일, 인터넷 모두 중독물질이고 학교, 학원, 명절, 결혼은 가족문화를 파괴하는 사회악이다.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다. 다만 개인을 격리하고 통제하는 우리 사회가 게임을 중독물질로 몰고 가고 있을 뿐이다.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기에는 게임이 있는 문화적, 교육적, 놀이적 가치가 너무 크다. 사행성이 강한 일부 게임을 지목한 것이 아니라 게임 전체를 중독물질로 규정한다는 것은 게임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드러낼 뿐이다.
게임이 중독물질인지에 대한 어떤 과학적, 임상적, 사회적 합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몇몇 우려스러운 사건을 예시하면서 게임을 중독물질로 단정하는 것은 중독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원인 분석과 그 해결방안들을 오로지 게임으로 환치시키려는 나쁜 정치적 습관이다.
대중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문화 콘텐츠를 중독물질로 규정해 사회악을 척결하겠다는 발상은 문화 콘텐츠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 폭력적인 마녀사냥의 자의식을 드러낸다. 진정 우리 사회의 중독문제, 반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차라리 게임을 중독물질로 운운하기보다는 게임의 문화적, 교육적 가치를 활용하는 게 대안일 듯싶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sangyeun6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