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뱅크`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서울산업통산진흥원(SBA)의 수장으로 지난 1년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비전을 얘기하는 이전영 대표와의 만남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와 상생 아이디어,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긍정의 원동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나오는 그의 아이디어는 서울시 산업 육성과 지원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맡은 바 일에 정성과 열정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조직의 열정 전도사 역할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다. SBA에 1년 동안 열정 바이러스를 퍼Em린 이 대표를 만나봤다.
대담=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저희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서울시 예산으로 이를 좋은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주요 업무입니다. 이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고민은 수동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야 진짜 원하는 도움을 줄 수 있고, 좋은 지원 아이디어도 나오는 법입니다.”
이 대표는 SBA를 서울시의 성장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곳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그가 가장 먼저 실천했던 것은 조직원의 의식 변화였다.
지난해 여름 SBA 수장으로 업무를 시작하면서 느꼈던 것은 수탁업무 조직의 수동적 문화였다. 사업의 95% 이상이 서울시 수탁과제다 보니 여건상 직원의 적극적 업무에 한계가 있었고 자연스레 수동적 문화가 점차 정착돼가고 있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대표가 직원들에게 요구한 건 선교자적 마인드였다. 과거 중남미, 아프리카 등 오지에 종교를 전파했던 선교사처럼 의지와 목표를 가진다면 같은 사업도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무엇보다 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선교사가 오지에서 어려움을 무릅쓸 수 있었던 것도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지와 목표, 성취감이 있다면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동적 자세는 행복한 일도 재미없게 만들어 버리고 모든 일을 최대가 아닌 최소 관점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전문가의 길을 제안했다. 단순히 서울시로부터 지원 사업을 수탁받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직원이 특정 분야에서 기획과 컨설팅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장려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SBA 문화가 전시회 관련 전시장을 대여하는 사업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SBA가 스스로 전시를 기획해 개최하는 형태로 바꿔가는 식이다.
서울시 수탁과제 비율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사업 중 10%를 자체 기획 사업으로 추진했고 올해는 그 비중을 20%로 늘릴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전체 사업 중 절반을 자체 기획해서 추진한다는 목표다.
서울형 일자리에서도 이 대표는 기존 일자리 창출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방법을 제안한다.
지금까지의 일자리 창출은 중소기업 육성을 이용한 신규 일자리 창출과 창업 육성 등이었지만 그는 청년 스스로 자기 자신을 고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구직자는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하고 중소기업은 제품 판로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한다면 구직자가 중소기업 판로 개척에 스스로 뛰어들어 두 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이미 대학생을 대상으로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SBA는 중소기업 제품 판로 개척 마케팅 지원에 대학교 홍보 동아리를 참여시키고 있다. 해당 동아리에 활동 지원금도 마련해 준다. 중소기업은 적은 비용으로 제품 마케팅을 할 수 있고 대학생은 취업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지금의 대학은 사회와 너무 많이 떨어져 있고 학생들은 이력서로 기업과 첫 대면을 합니다. 사회·기업과의 접촉 면을 넓혀 관련 정보를 많이 접할 때 취업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 대표가 제안하는 비즈니스 아이디어 중심에는 네트워크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제품과 구매자를 연결하는 것이 곧 비즈니스고 수익 창출이라며 비주류 네트워크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주부도 훌륭한 판매 네트워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미용실에서 만나서 나누는 얘기는 그 동네의 소문을 결정합니다. 또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자녀는 몇이고 몇 살인지, 학력수준 등 기업으로서는 알 수 없는 고객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중소기업 영업사원이 된다면 강력한 타깃 마케팅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판매 네트워크 속에 수많은 일자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먼지만 쌓이던 스마트패드가 동네 슈퍼마켓 주인 손에서 옆집 여고생에게 건네질 수도 있고, 과외 교습을 하는 대학생이 교재를 판매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 제품이 잘 안 팔리는 것은 소비자가 어떤 제품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소비자에게 필요한 제품을 설명하는 데 정성과 열정을 투자하면 수익을 충분히 낼 수 있습니다.”
창업에서도 판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만드는 것보다 파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젊은 창업자 대부분이 내가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냉정한 현실에 좌절하기 일쑤다. 이 대표는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하기 전에 먼저 팔아보는 경험을 쌓기를 제안한다. 유사한 제품을 미리 팔아보고 스스로 마케팅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 창업을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지난 1년 동안 SBA 업무를 탄탄히 다져온 이 대표는 서울시 산업 육성의 큰 그림을 그리는 마스터플랜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의 지원이 단위 사업 나열이었다면 이제는 각 사업을 연계해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창업도 청년 창업, 외국인 창업 등 굳이 분류하지 않고 녹색사업 등도 카테고리별 프로젝트를 키워 성과를 키워나갈 생각이다.
이 과정의 원동력은 고정관념의 타파와 긍정적 마인드다. 이 대표는 취임 이후 SBA의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바꾸는 이색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계약직에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지만 직무를 스스로 적극 추진하고 그 성과에 적절한 보상을 하는 데는 계약직이 좋다는 판단에서다.
SBA를 행복한 고민을 하는 곳으로 규정한 것도 긍정적 마인드의 결과다. 예산이 줄어 사업을 못한다는 불만보다는 아직 많은 예산이 남아있다는 긍정의 자세, 이 예산을 다른 기관과 매칭하면 사업을 갑절로 키울 수 있다는 추진력이 앞으로의 SBA를 이끌어 간다는 게 이 대표의 확신이다.
이 대표는 벤처기업인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창업 후 회사를 끝까지 챙긴다는 고정관념을 떠나 M&A도 새로운 사업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M&A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를 안 좋게 보고 막으면 인력을 빼가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대기업은 벤처기업의 기술과 조직을 후하게 사들이고 벤처기업은 그런 기업에 기술을 팔고자 연구개발을 계속하는 경제모델도 필요합니다.”
정리=
[이전영 SBA 대표이사는]
1954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전자 전공)를 졸업했다. 포스코 상무, 포스텍기술투자 대표이사, 포항공대 연구처장, 포항공대 기술사업화 센터장, 포항공대 부교수 등을 역임했다.
포스코 재직 당시 신사업개발실에서 미래 에너지 관련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등 이미 싱크탱크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포스코의 전력부담을 줄이려 여러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현재 포스코에너지가 연료전지사업을 진행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SBA 수장으로 오면서 본부장을 팀장으로, 팀장을 본부장으로 발령하는 파격적 조직개편을 시도했다. 직급보다 맡은 일을 누가 잘하고, 누가 적합한지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직급은 지위가 아닌 순수하게 보직으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포스코 시절 노하우를 발휘해 민간기업 색깔 칠하기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서울시 수탁사업으로 만들어진 수동적 문화를 능동형으로 바꾸고자 직원별 전문자격증 취득을 권장하며 직원에게 제2의 인생 준비 필요성을 강조한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