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사업 계획 수립에 착수한 디스플레이 업계가 차세대 시장 선점과 불경기 대응이라는 숙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기술 개발 실패와 경기 침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감안해야 할 상황이어서 투자 계획을 더욱 조심스럽게 세우고 있다. 여느 해와 달리 시황이 악화되면 언제든지 `플랜B`를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몇 가지 대안을 포함해 내년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용 패널 라인 투자 계획을 수립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내년으로 늦춘 AM OLED 신공장(A3) 투자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시장 상황이 많이 바뀐데다 고려해야 할 요인도 늘었기 때문이다.
이미 해를 넘기며 올해로 투자를 미뤄온 A3에는 지난 7월까지만 해도 TV와 스마트폰용 AM OLED 패널을 모두 생산할 수 있는 6세대(1500㎜×1850㎜) 라인을 구축키로 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가 꺾여 기존 생산 능력만으로 모바일용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계획이 바뀌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양산까지 돌입해 변수는 늘어났다.
불안정한 수율과 이로 인한 높은 가격 탓에 아직은 AM OLED TV가 시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들어 TV 업계가 초기 손해를 감수하고 본격 마케팅에 착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LG디스플레이가 AM OLED 증착 라인 투자에 이미 들어간 것도 파일럿 라인만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만큼 TV 수요가 생기지 않는다면 대규모 설비 투자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도 여전히 시장 반응을 타진 중이지만 언제 수요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장착키로 한 애플의 아이워치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을지 중요한 이유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시장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안을 기준으로 투자 계획을 수립 중이다.
LG디스플레이도 내년 옥사이드(산화물) TFT 투자 계획을 유연하게 수립할 예정이다. 이미 올 초부터 OLED TV용 패널의 증착 투자는 진행하고 있지만 기판 생산 능력은 파일럿 수준이다. 이 때문에 단계적으로나마 옥사이드 TFT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OLED TV 수요를 감안한 결정이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LCD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할 계획이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생산 능력도 신규로 늘리는 것보다는 현재 저온폴리실리콘(LTPS) 공정에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이 유력하다. LG디스플레이 정호영 부사장은 최근 IR에서 “시장 상황이나 수율이 생각만큼 따라 주지 않을 경우에는 옥사이드 하판 라인에서 LCD도 생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자를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