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6월 3일.
정보통신부는 이날 우정사업본부 설치추진단장에 이교용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프로그램심의위원장, 한국우취연합회장 역임)을 임명했다. 우정사업본부 추진단장은 정통부 소속 1급이 맡도록 한다는 대통령령에 따른 조치였다. 추진단 실무반장은 4급인 홍기환 정통부 서기관(작고, 우정사업본부 총무과장 역임)이 맡았다. 추진단 운영기간은 2000년 6월 30일까지였다.

추진단은 이교용 단장 아래 홍 반장, 기획과 조직, 사업을 맡을 3개 팀을 두었다. 기획팀은 이진설 서기관(한국우편물류지원단 이사장 역임), 조직팀은 이창구 사무관(현 서울강북우체국장), 사업팀은 권시혁 사무관(한국우편사업지원단 이사장 역임)이 팀장을 맡았다. 실무자로 윤선혁씨(현 경주우체국장), 최원봉씨(현 우정사업본부 사무관), 이문호씨(현 서울지방우정청 감사관실 감사업무총괄) 등 10여명이 배치됐다.
추진단은 정통부 안에 사무실을 두고 우정사업 경영비전과 조직 및 법령 체계 보완, 우편사업 수익 기반 확충 등을 수립했다. 우정사업본부 조직은 정통부 기획관리실에서 행정자치부(현 안전행정부)와, 예산문제는 재정경제부와 협의했다. 추진단은 우정사업본부 독립 건물 매입도 추진했다. 그러나 예산이 없어 물거품이 됐다.
권시혁 당시 사업팀장의 증언.
“서울 시내 몇 곳을 청사로 알아봤는데 예산이 없어 독립 청사를 구입하지 못했어요. 그 바람에 서울 광화문우체국 4·5·6층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추진단은 2000년 3월 12일부터 3월 21일까지 해외 우정정책과 사업전략을 참고하기 위해 독일과 스위스, 영국에 연구팀을 파견했다.
연구팀으로 파견됐던 윤선혁씨의 말.
“독일에서 DHL을 둘러 봤습니다. 영국도 우정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어 참고를 했습니다.”
2000년 3월 27일.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ICU 총장, 17대 국회의원, 현 KAIST 초빙교수)은 정통부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요업무를 보고했다.
안 장관은 이 자리에서 “오는 7월 우정사업본부를 발족시켜 사업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해 책임경영 체제를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우정사업본부 출범 2개월여를 앞두고 정통부는 본부장을 공개 모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통부는 그해 5월 25일부터 6월 9일까지 서류를 접수했다. 응모자격은 관련 분야에서 5년 이상 근무했거나 연구한 사람으로 △정부 산하단체 또는 상장기업의 이사급 경력자 △2급 이상 공무원 또는 석·박사로 제한했다.
마감 결과 이교용 본부장과 교수, 기업인 출신, 헤드헌터 추천 인사 모두 4명이 응모했다.
이들은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쳤다. 면접심사 때는 지식정보사회에 필요한 컴퓨터 인터넷 활용 능력과 영어 능력도 함께 평가했다. 심사위원은 행정자치부 추천 1명, 우정사업 전문가, 헤드헌터, 교수, 정통부 추천 각각 1명 총 5명이었다. 심사는 엄격하게 진행했다. 외부 입김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심사결과는 현장에서 곧바로 공개했다. 실력만이 당락의 기준이었다.
이교용 본부장의 증언.
“당시 정부가 처음 개방형 1급 직위를 공모하는 일이어서 안팎의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입사시험 보듯 했습니다.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면접은 장관실 옆 중회의실에서 했는데 응모자 4명이 한 방에서 대기하다가 한 사람씩 심사위원실로 불려갔습니다. 심사위원들이 그 자리에서 채점해 점수를 발표했습니다. 누굴 봐주고 말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앞으로 우정사업 운영방침과 조직발전 방안을 영어나 불어로 발표하라고 하더군요.”
운명의 발표일인 그해 6월 29일.
정통부는 초대 우정사업본부장으로 이교용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그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안병엽 장관의 회고.
“정통관료로 앞날이 창창한 이 실장을 초대 우정사업본부장으로 임명은 했는데 당사자 입장에서는 별로 내키지 않았을 겁니다. 제2차 정부조직 개편에서 그가 맡고 있던 정보통신정책실이 폐지됐으니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출범에 맞춰 우체국의 변화된 이미지를 적극 홍보하기 위해 우정사업 홍보용 캐릭터의 기본형인 `우정이`와 `온정이`를 개발했다. 남성형인 우정이는 우편 분야에, 여성형인 온정이는 금융 업무를 홍보하는 캐릭터인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본부장의 말.
“캐릭터를 개발하는 데 6개월가량 걸렸습니다.”
이 본부장은 취임 후 우정사업의 민간기업 변신을 위해 밀착형 대민 서비스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7월과 8월에 걸쳐 전국 우체국별로 다양한 기념 이벤트를 마련했다. 고객 만족 캠페인, 우체국 한사랑의 집 개설, 사은축제, 한마음 우표전시회, 주문형 우표판매, 우체국 휴면보험금 찾아주기, 이웃돕기, 사이버우체국 개관, 올림픽축구 8강 기원 정기예금 판매 등이었다.
권위는 솔선수범에서 나오는 법. 이 본부장은 고객을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현장을 뛰면서 자체 추동력을 만들었다. 고객만족을 최우선 경영과제로 선포한 그는 그해 7월 20일 하루 동안 간부들과 일일 집배원으로 일했다. 이 본부장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202번지 일대에서 일일집배원 근무를 하면서 집배원과 지역 주민들로부터 우편 배달 서비스에 의견을 들었다.
그는 7월 21일 충남 천안 정보통신교육원 대강당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우정사업 혁신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에는 안병엽 장관과 전국의 각급 기관장, 전국체신노조 간부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본부장은 혁신대회에서 “노사가 혼연일체가 돼 기업과 경쟁해서 이기자”면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시 노조는 구조조정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다.
구조조정과 관련한 이성옥 당시 우정사업본부 경영기획실장(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정보통신연구진흥원장 역임, 현 한국플랜트산업협회 부회장)의 증언.
“당시 2차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한 기획예산처에서 구조조정을 하라는 압력이 대단했습니다. 저도 김병일 예산처 차관(기획예산처 장관 역임, 현 한국국학진흥원장)에게 숱하게 불려갔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업무과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청와대에 실태를 보고해 대통령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어요.”
이후 노사는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노사가 일치단결해 노력한 결과 그해 9월 부산우체국에서 첫 낭보가 들려왔다.
혁신의 열매는 달고 사연은 감동적이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자갈치시장 어류 배송물량은 당시 민간기업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우체국은 남은 물량만 취급했다. 그것이 역전된 것이다. 부산우체국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 덕분에 기업들이 독점하던 물량을 우체국에서 맡게 된 것이다.
이 본부장의 증언.
“우체국 직원들이 친절하고 신속하게 자기 일처럼 일하자 물량 배송을 우체국에 맡기게 된 것입니다. 직원들은 새벽 4시에 나가 이튿날 새벽 1시까지 일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봉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체국 직원들의 열정과 최고의 서비스가 자갈치시장 배송 물량을 우체국이 독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해 9월 8일 우정사업본부는 2000년도 우정사업합리화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우정사업의 새로운 경영비전과 3대 주요 정책과제를 담았다.
우정사업의 경영비전은 `21세기 선진우편 창출-최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우정기업`으로 정했다. 이런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경영혁신을 통한 사업 기반 강화 △우편서비스 개선과 생산성 향상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 생산성 향상 등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그해 10월 9일 오전 10시 본부 청사에서 우체국 서비스헌장을 선포했다. 6개 항의 헌장은 우체국 전 직원은 고객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고객감동경영이 최고의 가치임을 깊이 인식하고, 고객의 눈높이에 맞게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을 다짐하면서 △우리는 고객을 정중하고 친절하게 맞이하여 최고의 우체국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우리는 고객의 우편물을 소중히 다루고 신속·정확·안전하게 수집, 배달하겠습니다 △우리는 고객이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이용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우리는 고객의 불만을 신속·공정하게 처리하고 잘못 제공된 서비스는 지체 없이 정당한 보상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고객의 소중한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여 고객중심으로 제도와 서비스를 개선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인 `서비스 이행표준`을 정해 이를 성실히 실천하겠습니다 등이었다.
이성옥 경영기획실장의 증언.
“서비스헌장은 최재유 과장(현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융합실장)이 맡아 제정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2001년 10월 7일 한국능률협회 컨설팅 주관으로 실시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공공서비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2002년 4월 10일. 우정사업본부는 2001년도 행정서비스 종합평가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8개 중앙부처와 15개 광역자치단체, 63개 기초자치단체 3개 분야로 나눠 실시한 종합평가에서 우정서비스가 최고점수를 받은 것이다.
이 본부장은 당초 임기 2년보다 8개월을 더 근무하고 노무현정부가 들어선 2003년 2월 말 퇴임했다. 그 뒤를 구영보 본부장(프로그램심의위원장 역임, 현 SK텔레콤 고문), 황중연 본부장(한국인터넷진흥원장 역임, 현 개인정보호협회 부회장), 정경원 본부장(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 남궁민 본부장(현 한국산업기술시험원장), 김명룡 본부장이 차례로 근무했다. 현재는 방통위 방송통신융합정책실장을 지낸 김준호 본부장이 지난 7월 1일 7대 본부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국민행복 우정서비스를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명박정부 들어 본가(本家)인 정통부가 간판을 내리자 지식경제부 소속기관으로 옮겼다. 박근혜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소속으로 다시 바뀌었다. 우정사업 책임경영시대를 열었지만 우정사업본부는 공사(公社) 또는 정부 외청(廳)으로 독립하는 것을 비롯해 경영자립 등 여전히 숙제를 안고 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