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52>우정사업본부(상)

116년 만의 우정사업 변신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철로 접어드는 2000년 7월 1일. 우정사업 책임경영 시대가 열렸다.

우정사업에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해 국민에게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우정사업본부가 이날 출범했다. 1884년 우리나라가 우편사업을 시작한 지 116년 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우정사업은 정보통신부 장관이 직접 관장했다.

Photo Image
우정사업본부가 2000년 7월 1일 오전11 서울 광화문 우체국에서 현판식을 갖고 출범했다. 왼쪽부터 정헌영 전국체신노조위원장, 이교용 우정사업본부장, 안병엽 정통부 장관, 변재일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는 본부장 아래 1실(경영기획실), 2사업단(우편·금융사업단), 1담당관(감사담당관), 11개과로 출범했다. 전국에 8개 체신청과 3개 직할관서, 그리고 3678개 우체국 등의 조직을 갖췄다. 직원 수는 4만1000여명에 달했다. 우편과 체신금융, 우체국 전자상거래 등 우정사업을 총괄하며 예산만 연 3조6000억원 규모였다.

안병엽 정통부 장관(ICU 총장·17대 국회의원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은 이날 오전 9시 장관실에서 초대 이교용 우정사업본부장(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프로그램심의위원장·한국우취연합회장 역임)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 본부장은 정부 최초로 공개경쟁을 거쳐 임명된 임기제 계약직 정부 산하기관장 1호였다.

우정사업본부는 오전 10시 대회의실에서 출범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는 안병엽 장관과 이교용 본부장, 정통부 간부, 전국 체신청장과 수도권 우체국 총괄과장, 노조지부장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정통부 내부 행사로 간소하게 진행했다.

이 본부장은 취임사를 통해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해 확고한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우편·금융·물류망과 연계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 우체국을 종합정보 서비스기관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본부장은 이어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우정사업에 도입해 국민에게 양질의 우편과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경영혁신과 합리화로 우정사업본부가 지역정보화 리더가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출범식에 이어 우정사업본부는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우체국 청사에서 안 장관과 이 본부장, 정헌영 전국체신노조위원장, 변재일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민주당 충북도당 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우정사업본부 현판식을 갖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이교용 초대 본부장은 정통관료 출신 학구파다. 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5년 행정고시 16회에 합격, 체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 국제행정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프랑스 파리9대학 전기통신 및 정보통신관리학 박사과정을 밟았고, 프랑스 체신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이어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정보통신과 우정 분야 전문가였다.

그는 정보통신부 국제협력관으로 재직 시 한미 통신협상 우리 측 대표로도 맹활약했다. 까다로운 미국 측 대표를 상대로 탁월한 정책이론과 풍부한 실무 경험을 토대로 우리 주장을 협상에서 확실하게 반영했다. 김대중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 나갔다가 정보통신지원국장을 거쳐 1급으로 승진해 정보통신정책실장으로 일했다.

그는 합리적이면서 소탈한 외유내강형이다. 그러나 업무에는 치밀했고 솔선수범형 리더십을 실천했다. 대통령직 전문위원으로 파견나가 정통부 PCS 비리의혹 제기에 끝까지 정통부 입장을 대변하다 한동안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다. 실장 재임 시 우정사업본부설치추진단장으로 발령받아 1년간 산파역할을 담당했다.

정보통신부는 우정사업본부 출범 하루 전인 그해 6월 30일 우정사업본부 간부급 인사를 단행했다. 우정사업본부 초대 경영기획실장에 이성옥 체신금융국장(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정보통신연구진흥원장 역임, 현 한국플랜트산업협회 부회장), 우편사업단장에 서광은 충청체신청장(서울체신청장 역임), 금융사업단장에 신영수 경북체신청장(한국무선국관리사업단 이사장 역임), 감사담당관에 장시영 본부 감사관(강원·충청체신청장 역임)을 임명했다.

이 밖에 과장급 인사로 △총무 이복동 △경영총괄 홍기환 △경영관리 최재유 △재무관리 이동오 △우편기획 장익형 △사업개발 김명룡 △국내우편 왕진원 △국제우편 박성용 △금융기획 이재태 △예금 이계순 △보험 변근섭 △우표실장 김익환씨를 발령냈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가 정통부 준독립기관으로 출범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사 추진과 무산이 반복됐다. 기간도 7년이나 걸렸다.

처음 우정사업 민영화를 공약한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그는 민자당 대선후보 시절 전국 우체국을 전산화해 지역정보화를 촉진하겠다면서 그 세부사항에 우정공사화를 넣었다.

이에 따라 윤동윤 당시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은 1994년 1월 13일 김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하면서 “우정사업의 경영쇄신과 자립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1997년에 우정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체신부는 그해 4월 7일 우정공사 설립추진반을 구성했다. 같은 해 12월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하자 정통부는 12월 30일 이재영 강원체신청장(경북체신청장 역임)을 체신공사설립추진위 사무국장으로 발령냈다.

정통부는 1995년 1월 27일 서울 광화문우체국 4층에서 체신공사설립추진위원회 현판식을 가졌다. 사무국은 총무반과 우정반, 금융반 3개 반을 두었고 인력은 38명이었다. 정통부는 그해 5월 11일 한국체신공사 설립 근거인 한국체신공사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서울에 3만㎡의 부지 협의도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던 공사 설립은 재정경제부의 반대와 그해 9월 4일 열린 당정협의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중단됐다. 대통령 공약사업인 공사 설립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정통부는 공사 설립이 무산되자 세 가지 대안을 검토했다. 특례법을 제정해 기능이 보강된 중앙부처 형태의 조직을 만드는 방안과 특례법 제정으로 자율성이 부여된 외청(廳)을 신설하는 방안, 체신공사를 다시 추진하는 방안이었다.

1996년 8월 24일. 정통부는 이날 우정사업경영개선기획단을 구성했다. 세 가지 대안 중 하나를 관철하기 위해서였다. 단장은 박성득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이 맡고, 부단장에 황중연씨(우정사업본부장·한국인터넷진흥원장 역임, 현 개인정보보호협회 부회장)를 발령냈다. 기획단은 제도개선부와 업무개선부를 두었다. 제도개선부는 서병조씨(방통위 융합정책실장·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운영지원단장 역임)가, 업무개선부는 최재유씨(현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방송정책실장)가 담당했다. 전체 인원은 15명이었다.

그해 9월 11일 오후. 정통부는 서울 광화문우체국 5층에서 기획단 현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강봉균 정통부 장관(청와대 경제수석·재경부 장관·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임, 현 건전재정포럼 대표, 군산대 석좌교수)과 이종식 전국체신노조위원장, 정보통신부 관계 실·국장 및 기획단 직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강봉균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앞으로 우정사업은 경영체제 개편과 새로운 경영전략 창출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단은 정부기관 형태를 유지하면서 기업경영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 제정이 필수였다. 그러나 특례법 제정 길목 곳곳에 난관이 잠복해 있었다. 예산을 다루는 재경부, 기관의 조직을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등과의 협의가 순탄치 않았다. 업무협의 과(課)만 13개나 됐다. 황 부단장은 이들 과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담당 사무관부터 과장에 이르기까지 업무협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진전이 거의 없었다.

황 부단장은 어느 날 강봉균 장관실로 올라갔다.

황 부단장의 말.

“강 장관에게 재경부 담당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달라고 건의했어요. 그랬더니 강 장관이 안병우 재경원 제1차관보(예산청장·충주대 총장 역임)에게 전화를 해 `관련자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해달라`고 하셨어요. 재경부에 대한 강 장관의 영향력은 대단했어요. 그래서 토요일 오후 재경원 출신인 서병조 부장과 재경부 회의실로 가서 특례법 설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15명 정도가 모였더군요. 질의응답까지 포함해 3~4시간 걸렸는데 특례법 제정 이유와 필요성을 분야별로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정통부는 그해 10월 8일 우정사업 경영 합리화를 도모하기 위한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을 입법예고했다. 특례법은 우정사업 운영 자율성과 기업성을 높이는 게 골자였다.

황 부단장의 계속된 증언.

“그후 정통부 간부회의에서 특례법 제정건을 보고했더니 칭찬에 다소 인색한 강 장관이 `고생 많이 했다`고 치하하더군요. 1년간 추진단에서 일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조직과 기능이 당초보다 위축됐어요.”

정통부는 1997년 2월 18일 신윤식 전 체신부 차관(하나로통신 회장 역임, 현 정보환경연구원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8명의 위원회를 발족했다.

정통부는 1998년 4월 17일 김대중 대통령이 정통부를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특례법 개정을 건의했다. 자율성을 확대해야 우정사업 적자를 해소할 수 있었다.

서영길 당시 우정국장(현 IGM세계경영연구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만성적인 우정사업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우정사업과 체신금융사업을 전담할 우정사업본부를 설치하고자 하오니 각별한 배려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당시 청와대에는 이런 점을 잘 아는 강봉균 전 장관이 정책기획수석으로 근무했다. 정통부는 그해 6월 9일 우정사업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마련, 입법예고했다.

1999년 3월 30일. 정부는 국민의정부 제2차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부처 간 숨가쁜 줄다리기 끝에 그해 5월 17일 국회는 공무원 8358명을 감축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및 직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정통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도 바뀌었다. 1급이 실장이던 정보통신정책실은 정보통신정책국(2급)으로 축소됐다. 우정국과 체신금융국은 1급이 본부장인 우정사업본부로 통합됐다.

우정사업본부 출범은 국민의정부 제2차 정부조직개편 방안과 맞물린 조치였다. 정통부는 하나를 얻고 다른 하나는 내준 셈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