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호의 20대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게임` 한 글자뿐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으신다면 `실패하면서` `더 힘들게` 살아보려 합니다. 지난 12년간 프로게이머의 인생만 살았으니 이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스타크래프트로 한국 e스포츠 시장을 주름잡은 `4대 천왕` 중 한 명. 경기 초반부터 상대를 빠르게 밀어붙이는 전략을 구사한 `폭풍 저그`. 결승에서 번번이 준우승에 그쳐 단 한 번도 우승을 거머쥐지 못한 비운의 선수…. 무대를 떠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홍진호 선수는 e스포츠의 지지 않는 별로 남아 있다.
열 아홉 살이었던 지난 2000년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홍진호 선수는 국내 e스포츠 산업과 함께 성장한 대표 인물 중 하나다. 임요환, 이윤열, 박정석 선수와 함께 `4대 천왕`으로 불리며 e스포츠가 대표적인 청소년 문화로 자리잡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홍 선수는 지난 2011년 6월 프로게이머 은퇴를 선언하고 12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듬해 제닉스스톰 감독으로 변신해 팀을 이끌었지만 1년 남짓에 불과했다.
무대를 떠난 지 2년이 넘었지만 홍 선수는 여전히 e스포츠계 스타다. 길을 다니면 여전히 홍 선수를 알아보는 반가운 눈빛들이 그의 주변을 맴돈다. 홍 선수가 맞는지 한참 쳐다보며 수군대는 사람들, “무척 좋아하는 팬이에요”라며 한참 바라보다 수줍게 악수를 청하고 가는 남학생까지…. 홍 선수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다”며 쑥스러워 했다.
최근 홍 선수는 케이블 방송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에 출연해 팬들을 또 한 번 설레게 했다. 전문 방송인으로 새 출발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일부 있었지만 현재 공식 직함은 `백수`다.
홍 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혼자 서울에 올라와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뒤 남들처럼 제대로 된 여행을 가거나 쉬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전성기 때는 한 달에 한 번 외출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그는 “게임이 재미 없고 더 이상 도전하는 의미가 없어서 은퇴했는데 쉬면서 게임을 다시 하니 너무 재미있어서 신기했다”며 “스타2와 리그오브레전드를 즐긴다”며 웃었다.
열 아홉 살부터 서른 한 살까지 홍 선수의 삶은 게임뿐이었다. 국내 e스포츠 산업이 부흥한 역사가 오롯이 홍 선수의 전성기와 일치한다.
그는 “데뷔 당시 프로게이머를 전문직으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없었다”며 “어린 나이에 뭔가 해보고 싶었고 잘하는 게임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데뷔 당시를 회상했다.
2000년과 2013년 e스포츠 시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홍 선수는 “당시에는 e스포츠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프로게이머가 전문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았고 경기를 하러 가도 제대로 된 선수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연봉도 적었지만 그저 게임이 좋아서 뛰어든 선수들이 시장을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 이제는 대기업이 선수단을 운영하고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생길 정도로 하나의 산업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홍 선수는 “e스포츠 인기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일반 스포츠 종목처럼 e스포츠도 정식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장이 계속 커지는 것을 느끼면서 산업을 더 크게 만들자고 선수들끼리 다짐도 하고 세계 진출에 대한 꿈도 키웠다”고 말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는 어떨까. 그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 e스포츠 발전이 더뎌진 것 같다”고 했다.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프로게이머를 육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산업을 키우고 있지만 한국은 경쟁이 치열한 데 비해 선수의 처우가 아직도 열악하다. 경력 단절에 따른 재교육도 절실하다.
홍 선수는 “나는 그나마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은퇴 후에도 감독생활을 하는 등 비교적 잘 풀린 사례”라며 “함께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던 유명한 선수들 중에는 식당이나 PC방을 시작하는 등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제 홍 선수도 e스포츠 업계를 떠나 일반인이 됐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서른 두 살 청년의 고민과 꿈은 무엇일까.
그는 “20대에는 여러 가지를 해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난 철저히 게임 하나에만 매달렸다”며 “비록 잘하지는 못해도 새로운 것을 해보면서 재미있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또 “정말 좋아하고 도전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성공해도 공허하고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 강요식의 사회 시스템에 맞춰서 살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서른 두 살이면 아직 젊잖아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너지고, 망가지고, 그러면서 도전하고 싶은 것을 찾을 겁니다.” 앳되 보이는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