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시대다. 지금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기업가·과학자·개발자 역할도 중요하지만 참신하고 튀는 아이디어를 보유한 예비 사회인의 역할이 더 요구된다. 이들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은 산업·경제·사회 각계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기성세대의 DNA와 접목해 또 다른 시너지를 낸다.
전문가들은 지금으로부터 5년이 우리 경제·산업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1990년대 인터넷 시대 도래와 마찬가지로 스마트기기의 보급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산업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 시점에 우수 인재가 등장해 역량을 마음껏 펼친다면 국가 경쟁력이 더욱 높아진다. 반대의 경우 여타 선진국뿐만 아니라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대로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청년이 사회의 핵심 인력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기존 세대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들 세대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 좌절 경험은 후배에게 좋은 본보기이며 시행착오 횟수를 줄이는데 크게 도움을 준다.
전자신문은 창간 31주년에 맞춰 `2044 그들이 사는 세상`을 주제로 지난달 27일 전자신문 본사에서 방담 자리를 마련했다. 과학과 산업계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 이민화 KAIST 교수와 청년 기업가 이윤경 오픈놀 이사(하나고 3년)와 로봇영재로 중고등학교 연합 로봇동아리 `라레스팀`의 리더인 한동희 팀장(양명고 2년)을 초청해, 허심탄회하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와 청년 세대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
이민화 KAIST 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이윤경 오픈놀 이사(하나고등학교 3학년)
한동희 라레스팀장(양명고등학교 2학년)
※사회=김준배 전자신문 차장
◇사회(전자신문 김준배 차장)=청년이라면 누구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갖고 있다. 서정욱 전 장관, 이민화 교수 두 분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날을 밝혀줄 청년들에게 좋은 조언을 부탁한다.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정부 요청을 받고 도탄에 빠진 `한국형 전전자교환기(TDX)`사업을 맡았다. 당시 이 사람 저 사람 물색하다가 나를 찾았던 것 같다. 상황은 매우 안 좋았다. 심지어 `이 사업이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런 상황임에도 사업을 맡았다. 여의치 않은 상황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면 누구도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로 `미쳐야 미친다`고 맘을 먹었다. 전자의 `미쳐야`는 열정(熱情)이고 뒤의 `미친다`는 도달(到達)이다. 미친 듯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한다는 의미다. 미지에 도전하는 연구개발에는 해답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치면 미친다. 연구개발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민화 KASIT 교수=가난한 나라였던 우리나라가 지금 이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사람의 고생과 희생이 있었다. 현재보다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들이다.
우리는 그 분들의 도전정신을 배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도전은 무식해야 한다`고 정의하고 싶다.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도전하지 못한다. 도전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시작할 때는 원대한 꿈을 꾼다. 하지만 사업이든 프로젝트든 진행과정에서 꿈이 잘 보이지를 않는다.
◇사회=어렵고 힘든 경험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사례 소개 부탁한다.
◇서정욱 전 장관=1960년대 해외에 유학을 갔을 때다. 언어·풍습 등 모든 것이 낯선 곳이었다. 현지인보다 더 인정받기 위해 오줌이 노래지도록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세대는 영양실조, 체중미달 등 신체검사에 걸려 유학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건강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폐결핵 환자로 판명돼 유학의 꿈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힘든 유학 생활이었지만 돌아가서 일할 조국, 대한민국이 있어서 마음은 언제나 흐뭇했다.
◇이민화 교수=KAIST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지금의 메디슨(현 삼성메디슨)을 창업했다. 당시 우리가 개발한 혁신적인 기술인 초음파 진단기를 들고 여기저기 바이어를 찾아다녔다. 바이어에게 `이것을 시장에 내놓으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정말 처음에는 한명도 설득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만들어낸 것이 벤처기업이다. 기술로 승부하는 기업군을 만들어 이미지 확산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디슨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벤처 양성이 필요해, 현재의 벤처기업협회를 만들었다.
◇사회=벤처협회는 우리나라 벤처산업 발전의 기틀을 닦았다. 자세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민화 교수=당시 기업가의 꿈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다리`를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하는데 어려움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 협회는 우리나라 벤처 성장의 양대 축이 된 코스닥과 벤처특별법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후 인터넷 코리아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했다. 미국이 경제 대공항 당시 다리를 놓고, 길을 닦고, 댐을 만들었듯이 벤처는 온라인 세상을 만들었다. 그 결과물이 1만개의 PC방과 세계적인 게임업체와 전자상거래업체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데 크게 기여했다. 지금 강조되는 창조경제는 이들을 성장동력으로 다시 산업을 살려보자는 것으로 봐야 한다.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앞으로 5년 정도다.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내세우는 슬로건이 `창조경제`든 `미래경제`든 중요하지 않다. 5년 후에 우리나라는 노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국가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5년밖에 시간이 없다. 우리는 PC혁명을 잘 받아들였다. 이제는 스마트 혁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두 분과 같은 청년이 주역이 돼야 한다.
◇사회=이번에는 젊은 세대에서 말할 차례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심 분야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이윤경 오픈놀 이사(하나고등학교 3학년)=제가 창업 멤버로 참여한 오픈놀은 학생의 진로교육을 돕는 벤처기업이다. 창업 동기는 주변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결정했다. 친구들의 꿈을 들어보니 모두 비슷했다. 문과 학생은 변호사와 외교관, 이과 학생은 의사나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떻게 모든 학생이 비슷한 꿈을 꿀 수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경험이 다른데 모두 똑같은 꿈을 꾸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봤다. 학교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찾지를 못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됐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비전을 찾아야 한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개발하고 역량을 높여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자신의 비전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빅데이터`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것을 기반으로 학생이 원하는 비전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개발하게 됐다.
◇한동희 라레스팀장(양명고등학교 2학년)=언제부턴가 로봇에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버지가 로봇을 사다 준 것이 흥미를 갖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로봇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 학원에 다녔다. 로봇을 보면 볼수록 흥미로워 배운 것을 토대로 혼자서 다른 연구와 개발을 했다. 로봇에 대한 연구가 계기가 돼 로봇경진대회에 나가게 됐다. 남들은 부모가 로봇에 빠지면 반대를 한다는데 저의 부모는 많이 이해해줬다. 그래서 로봇에 더 열정을 쏟았던 것 같다.
◇사회=청년들에게 훌륭한 삶에 대해 논해 보자.
◇서정욱 전 장관=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튼튼한 기초를 강조하고 싶다. 신체와 정신이 단단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이민화 교수가 얘기했듯이 우리나라는 5년 안에 결판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건강`이다. 살다보면 건강 때문에 의지를 꺾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본인에게도 무척 충격적이다.
젊은 후배들이 어떤 일이든 성취하려면 미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인 체력을 튼튼하게 유지해야 한다.
주변에 수많은 장애물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실력이 없으며 안 된다. 주변에서 비하와 견제도 수도 없이 많이 듣는다. 때론 자기 성과를 남에게 돌려줘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묵묵히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인정을 받는다.
◇사회=정말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많아 보인다. 이런 벽을 허물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서정욱 전 장관=국가와 사회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기회를 줘야 한다. 소위 기회박탈의 사회학을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골고루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벌, 가정환경 등을 이유로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갖고 있는 지식·정보에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개인 한 사람은 평범하고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팀을 이뤄 훌륭하게 팀워크를 발휘한다면 남다른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창조`라고 본다.
벤처도 마찬가지다. 벤처하면 재테크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생각하는 벤처란 신소재(新素材)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다. 신소재란 물질적 소재보다는 정신적 소재를 말한다. 칸트는 평생 자기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다지만 모든 인류와 지구에 `철학`이라는 정신적 신소재를 남겼다.
미래는 `알 수 없는(unknown)` 것이 아니다. 바로 창조하는 것이다. 노운(Known)에 대한 도전은 개미가 쳇바퀴를 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길을 걷다가도 볼트나 너트를 보면 반드시 줍는다. 남들이 필요 없다고 해서 버린 것이라도 뭔가 쓸모를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주변에는 욕심만 있고 실력은 없는 `그리디 풀(Greedy fool)`이 많다. 벤처 중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도덕해이, 에너지 고갈, 자연 재해 등 성장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구의 미래를 벤처들은 대비해야 한다. 미래는 미지가 아니다. 미래는 창조하는 것이다.
◇이민화 교수=두 분은 `괴짜`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다소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괴짜` `황당한 놈`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사람은 정상인이 많았다. 소위 성실한 사람들이다. 앞으로는 다르다. 괴짜들이 나와야 한다. 괴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 협력하지 않는 괴짜는 성실한 사람보다 뒤떨어진다. 괴짜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정욱 전 장관=그게 바로 팀워크다. 팀워크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민화 교수=팀워크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힘은 바로 `경쟁`이다. 이제는 경쟁을 넘어서야 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혼자 개척하면 힘들다. 경쟁이 아니고 협력의 사회로 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괴짜들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한동희 팀장=지금까지의 산업 발달이 괴짜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말에 공감한다. 앞으로는 괴짜가 혁신을 일으킬 것이다. 그 혁신은 새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소비와 새로운 생활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가는 일자리를 만드는 중요한 창조자라고 생각한다. 변화하는 주위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여 혁신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윤경 이사=`오타쿠`라는 용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쓰인다. 사람들은 그들을 희화화하거나 비꼬는 등 부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오타쿠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한 분야에 천재적일 정도로 탁월하고 많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를 일컫는 말이다. 단순한 팬에서 마니아로, 마니아에서 전문가로, 전문가 중에서 광적인 몇몇이 오타쿠가 된다. 저는 괴짜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먼저 이런 오타쿠에 대한 비판적인 선입견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 오타쿠, 물리학 오타쿠, 수공예 오타쿠, IT 오타쿠, 추리소설 오타쿠 등 누구나가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그것을 깊게 파고들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그리고 오타쿠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사회=이번에는 실패에 대해서 논해 보자. 일반적으로 성공에는 더 많은 실패가 존재한다. 실패를 어떻게 보는가.
◇이윤경 이사=실패의 정의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뭔가 변화를 시도하다가 안됐다고 이것을 실패라고 단정을 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민화 교수=좋은 생각이다. 실패는 학습이다. 한 번의 실패로 사회에서 축출되면 괴짜들은 숨어버린다. 꿈을 가슴속에 꽁꽁 쌓아놓고 나서질 않는다. 그것은 창조와 발전을 막는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괴짜는 남들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실패라는 것은 사업 또는 연구를 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성공으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다.
◇이민화 교수=성공을 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계획인가.
◇이윤경 이사=성공이라는 개념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회사라는 곳이 좋은 게 한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는 게 `여기까지가 성공이다`가 아니다. 기업의 연구개발(R&D)은 언제나 이어져야 하듯이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민화 교수=좋은 생각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에 끝이 있다고 보지 말아야 한다. 사회에 가치를 만들어 줘야 하고 그 가치에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 보상받은 매출은 적절히 분배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조직, 사회 전체가 커나갈 때 바로 선순환 사회가 되는 것이다. 보상을 받고 나눔을 행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가의 일이다.
◇서정욱 전 장관=청년들에게 `열병(Fever)`과 `열정(Passion)`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벤처는 이 부분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열정은 확고한 주관과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 벤처기업의 탈을 쓰고 `돈 벌기` 병에 걸린 사람들을 가끔 본다. 요즘 젊은 층은 기성세대들이 생각하고 경험하지 못한 모험의 세계에 도전해야 한다. 열정이 넘쳐야지 열병에 걸리면 안 된다.
◇한동희 팀장=로봇을 만들 때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민화 교수=군사용 로봇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나.
◇한동희 팀장=군사용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제가 꿈꾸는 로봇은 심부름을 하는 등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로봇이다.
◇사회=두 분 석학들에게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는 기회를 가져보자.
◇이윤경 이사=벤처 생태계에 대해 묻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벤처 창업에 대한 지원을 많이 늘리고 있다. 대학생 창업도 독려하는 분위기다. 반면에 실리콘밸리와 다른 부분이 사회 안전망이 구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벤처를 창업한다면 취업이 안 돼서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편으론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업을 장려한다면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필요하다. 오히려 창업 독려보다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민화 교수=정확한 지적이다. 한국 벤처 정책이 어느 순간 공급(창업지원) 위주로 바뀌었다. 반면 실패한 사람이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다. 돈을 빌리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한 번 실패는 신용불량으로 이어진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다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자가 평균 2.8회 창업한다고 한다. 한국은 한 번밖에 안 된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실리콘밸리 사회안전망의 핵심은 돈을 빌리지 않고 투자를 받는다는 점이다. 투자 위주의 창업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투자한 사람이 돈 벌게 해줘야 한다. 창업 5년 정도 후, 돈을 벌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수합병(M&A) 시장이다. 창업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하려면 13년 정도 소요된다. 창업한지 5년 정도 지났을 때 M&A시장을 만나야 한다. 이것이 어려운 문제다. M&A시장이 제대로 형성된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전 세계가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M&A시장을 만드는데 실패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을 해야 한다.
◇서정욱 전 장관=창업 후 실패해도 원상복귀가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패의 요인에는 자업자득인 경우도 있지만 국내외 정치·경제환경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경기가 침체돼 시장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창업을 무작정 권장하는 풍토는 문제다. 정부의 과욕이 창업 열병을 만연(蔓延)시킬 수도 있다. 법, 제도, 윤리, 국내외 관행 등 사회 학습이 안 된 사람들이 숭고한 벤처정신을 훼손시킬 수 있다.
내 청소년 시절에는 벤처라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오늘의 청소년은 `미쳐야 미친다`는 말을 실감하는 벤처 시대에 살고 있다. 구세대로 불리는 우리 세대는 1970년대의 국방정보통신, 1980년대의 1가구 1전화, 1990년대의 휴대폰 등 미래를 열어온 사람들이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고 보니 나도 벤처 창업을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세대가 바뀌더라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6·25전쟁으로 고등학교 때 부산으로 내려가 입시공부를 했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통신전자부품을 수집하는 `취미의 열병`에 걸려 학업성적이 추락한 일도 있었다. 의미 있었던 시절이다.
로봇, 창업, 벤처 사업 등 여러분의 열정을 버리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러분이 현재 미친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하든 중요한 체험과 저력이 되어 미래를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여러분이 학업과 취미생활을 조화시킨 체험은 국가와 사회에 큰 밑바탕이 된다.
◇사회=우리 교육현실에 대해서도 논해 보자.
◇한동희 팀장=우리 사회가 같은 학습만을 요구하는 것 같다. 대학도 꼭 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이 돼 있다. 그러다보니 로봇을 하는 시간이 점점 줄게 된다. 계속해서 로봇을 연구하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과학자가 인정을 받기를 바란다. 응용과학을 위해서는 기초과학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그렇게 되면 기초과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응용과학도 약해질 것이다.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동일 학문 전공자뿐만 아니라 이종 학문을 전공한 사람이 융합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도록 돕기를 바란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마음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시간과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민화 교수=우리 사회에는 괴짜들이 많다. 이들은 괴짜라는 발톱을 숨기고 산다. 이제는 발톱을 내놓고 사회로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는 모방경제에서 표준품만 만들어 왔다. 대학입시도 표준품을 요구한다. 다양한 창조성이 나와야 한다. 바뀌어야 한다. 수많은 영재들이 쓰러져가는 이유가 이런데 있다. 고등학교 1· 2학년까지 영재성을 발휘하다가 3학년에 입시로 돌아서면서 힘들어진다. 대학입시를 다양화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을 안가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윤경 이사=오픈놀이 교육회사이다 보니 입시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저도 고등학교 3학년이어서 원서접수가 1주일밖에 안 남은 상황이다.(방담은 8월 27일에 진행) 저는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3년 동안 입시제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저를 받아주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 다행히 입시교육에 변화가 보인다. 입학사정관제로 꿈이나 끼가 있는 선배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보면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입시는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매체에서 형성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는 것 같다. 제도가 바뀐다면 톱다운 방식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한동희 팀장=학교에서 IT 관련 수업을 거의 듣지 못한다. 문과 학생은 중학교 때 부터 입시 수업을 받는다. 이러한 환경이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우수한 인력이 이공계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와 같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회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로봇을 만들러 가겠다`고 말하자, 거의 모든 교사들이 스펙은 쌓았으니 이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열정을 잃지 않게 도움을 줬으면 한다. 2004년도에 세계대회에 나갔을 때 만난 미국과 스페인팀을 최근 다시 만났다. 비슷하게 로봇을 시작한 이 팀들은 현재 저와 다른 환경 속에서 로봇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로봇에 열중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다. 사회적 인식과 기반이 그들을 지금의 수준으로 성장하도록 도왔다. 스페인팀은 로봇을 개발해 교육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런 학생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학입시가 먼저라는 생각 때문에 로봇을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연구가 떠올라도 혼자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경우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동료를 찾지만 쉽지 않다. 동료가 없어서 연구를 뒤로 미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하면 `그건 대학에 가서 하라`는 말을 들을 때 제일 힘이 빠진다.
◇이민화 교수=이런 개인의 문제의식이 사회 문제로 승화돼야 한다. 이 주제를 계속 끌고 갔으면 한다. 꿈·끼·깡 이들 세 가지 `쌍기역(ㄲ)`이 인생을 살찌게 하는 단어들이다.
◇서정욱 전 장관=개미 쳇바퀴 돌 듯 하는 벤처를 자주 본다. 창조경제 시대의 벤처는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부모가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인생은 고비 고비마다 결단을 해야 한다. 해답이 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답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학창시절과 다르다. 고비 고비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나의 정답은 다른 사람에게는 제2, 제3의 답일 수 있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해야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자기가 생각한 해답이 틀렸다고 생각하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러분의 인생은 다양한 생각을 구현하길 바란다. 여러분은 유연(플렉시블)한 사고방식의 세대가 돼야 한다. 그래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정리=
◇이윤경·한동희씨가 본 `방담`
아직은 학생 신분인 이들에게 이날 방담은 쉽지 않은 자리였다. 처음 서정욱 전 장관, 이민화 교수의 말에 제대로 의견을 밝히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이들은 방담에 대해 `앞으로의 삶에 크게 도움이 되는 뜻 깊은 자리였다`고 밝혔다.
이윤경 이사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스타트업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때로는 편견에 시달리기도 했고 우려 섞인 말들을 듣기도 했다. 진지하게 임하고 있음에도 사회에서 `나이`라는 것이 가진 제약이 많았다”며 “그러나 이것이 손해이거나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나만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됐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이어 “오늘 자리는 저에게 자극도 주고 동기도 많이 부여했다”면서 “좋은 생각을 하고 큰 뜻을 품고 많은 경험을 해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인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한동희 학생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갈지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됐다며 두 분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동희 팀장은 “서정욱 전 장관께서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기회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말과 평범한 사람도 천재성을 갖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며 “자신만의 천재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주위의 비난이 들려도 저의 생각을 유지하며 나만의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주위에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이나 힘들어하는 동료를 잘 챙기면서 협력하고, 실패를 해도 그 실패를 학습으로 승화시켜서 성공의 밑거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이민화 교수의 `무식해야 도전한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며 “앞으로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일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