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2-창조, 현장에서 찾다]창조 경제 실현을 위한 특별 대담

미국 국방부에서 항공 전문 과학자들이 모두 모여 음속의 열 배가 넘는 제트기를 개발했다. 그런데 시험비행 중 속도가 너무 빨라 날개가 부러졌다. 국방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과학자가 해결방안을 찾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마지막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랍비에게 자문을 구했다. 답은 엉뚱하게도 화장실에서 나왔다. 화장지를 찢을 때 화장지에 톱니자국이 있는 `경험`을 적용해 제트기 날개에 구멍을 뚫었다. 창조적인 역발상이다. 미국은 세계 최초의 음속 제트기를 만든 국가가 됐고 이를 발판 삼아 항공 선진국으로 급부상했다.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창조`다. 새 정부 국정과제로 급부상하면서 국내 산업 생태계도 급변했다. 하지만 아직 방향타를 잡지 못했다. 세계를 향한 광활한 활주로는 열렸지만 `창조경제` 제트기를 어떻게 조종할지 정부와 기업이 방향을 정해야 할 시기다. 창조경제의 방향타를 잡을 금융과 기업 `기장`들에게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제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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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현장이 답이다`를 주제로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특별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대담=강병준 전자신문 경제과학벤처부장

참석자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이부섭 동진쎄미켐 대표,

김용범 토비스 대표

◇사회:강병준 전자신문 경제과학벤처부장=창조경제가 새 정부 최우선 국정과제로 떠올랐다. 은행과 기업 각자의 상황이 다를 텐데 창조경제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서구 선진국은 이미 문화적 자산을 기초로 문화예술 분야 중심으로 창조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학기술과 ICT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것에 코드가 맞춰져 있다. 한국형 창조경제라고 말한다. 결국 창의성에 핵심 가치를 두고 과학기술과 ICT를 융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창조경제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지식서비스와 문화콘텐츠, 첨단융합 산업 등 고용창출과 성장잠재력이 높은 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또 창조경제의 허리가 될 창조형 중소기업이 많이 출현해야 한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아직 산업 성숙도가 낮고 업종 리스크는 높다. 글로벌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내 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자금 지원과 해외 진출 노하우가 필요하다. 정부와 금융권에서 이를 도와줘야 한다.

◇김용범 토비스 대표=한국 경제는 그동안 대기업 위주의 생태계를 갖고 대기업이 주도했다. 하지만 창조경제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중견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형 창조경제는 허리인 중견기업을 튼튼하게 육성하고 기술력과 창의성을 가진 벤처·중소기업이 자금 걱정 안 하고 가능성을 펼치는 신생태계 조성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경제위기 광풍이 닥쳤을 때 독일만은 끄떡없었다. 바로 경제의 허리가 되는 중견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독일 중견기업 비중은 14%다. 우리나라는 0.04% 정도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른바 스타트업 기업을 많이 육성해 한국경제의 틀을 바꾸는 것, 그게 창조경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진흥책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복지원과 퍼 주기식 대책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부섭 동진쎄미켐 대표=기업이 체감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다. 정부와 금융권에서 각종 진흥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반은행은 아직도 담보가 없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는 관행이 있다. 아이디어와 창의성, 가능성을 보고 자금 지원에 나선다고 하지만 이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국내 정책금융기관이 좀더 역할을 분담해 자금 지원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지식재산권 가치 평가제도 도입한다고 하지만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동진쎄미켐은 중국 진출을 위해 시설자금 중 30%를 수출입은행에서 받고 있다. 조건이 꽤 좋다. 회사를 운영하는 데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는 자금 조달의 사각지대를 정책금융기관과 민간금융사가 적절히 조율하고 운용해야 한다. 대신 기업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체계도 수반돼야 한다.

◇김용환=수출형 기업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고 대외거래 자금 또한 대형화되는 추세다.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가용 자금에는 한계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자본을 적절히 매칭시키는 대안이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이 매칭 부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

최근 정부는 대내정책금융은 산업은행으로 통합하고 대외정책금융은 기존 정책금융공사의 해외업무 자산을 수출입은행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개도국 수출지원과 중장기·대규모 해외건설, 플랜트 지원 중심으로 기능을 개편하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마련했다. 각 기관별 기능을 재정비함으로써 중복 요인은 앞으로 상당부분 제거될 것으로 보인다. 각 정책금융기관이 협의해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는 후반 작업이 필요하다. 각 기관별 핵심 업무 역량에 집중한다면 국내 기업에 충분한 금융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김용범=창조경제와 관련한 지원 대책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린다고 해도 규모가 작은 벤처, 중소기업이 이를 쓰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도 문제지만 지식재산권이나 기술 등을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 심사기법도 변해야 한다. 은행 심사 인력들이 좀 더 심사기법을 다양화해야 한다. 기업 리스크를 우선시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또 무형 자산에 상당히 인색하다.

결국 꿈을 안고 기업을 키우려는 중소기업들은 이 같은 자금 유동성에 막혀 해외로 나가는 것조차 힘든 악순환의 반복이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실적을 쌓아야 하고 경험이 있어야 한다. 초기 경험을 쌓기 위한 도전을 측면 지원하는 것이 절실하다.

◇사회=중소기업에 한국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데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으면, 바로 인력문제라고 한다.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CEO로서 사람 구하기가 진짜 어려운가.

◇이부섭=요새 중소·중견기업은 1980~1990년대 중소기업과 많이 다르다. 생산 시스템은 거의 완전자동화를 이뤘고 해외 현지법인을 갖춘 기업도 많다. 그런데 실제 대졸 인력을 뽑으려면 하늘의 별 따기다. 청년실업이 20%를 넘었다고 하는데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동진세미켐도 고급 인력과 경력직을 뽑기 위해 복리후생을 강화했지만 인식 자체가 변하지 않아서인지 구인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인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우수한 인력이 없다. 산업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실력있는 인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초·중·고등학교 때 능력을 선별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돼야 하고 창조경제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본다.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에 보다 강화된 인센티브제를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채용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당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용 증가율 3% 이상을 달성한 중소·중견기업에 금리를 우대해주거나 취업 장려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런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편견도 상당부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김용범=중소기업의 구인난 문제는 오랜 난제 중 하나다.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한 청년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청년은 `갑을` 관계가 싫어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답해왔다. 자기보다 성적이 좋지 않고 인기도 없던 대학 동기가 대기업 구매부서에 있더라는 것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에 다니는 게 자존심 상하고 왠지 비참해진다는 답변도 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중소, 중견기업이 독립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하고 그동안 갑을 관계로 형성된 대기업·중소기업 간 먹이사슬 같은 구조를 개혁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는 방증이다.

중소기업 사장들이 인력난을 외치지만 정작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있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중소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떼는 순간 그동안 받아온 많은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는 편협한 경영방식을 고수한다. 중견기업으로 한단계 성장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이는 M&A 시장에서도 볼 수 있다.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에 인수합병 당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혜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제도적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

◇사회=수출은 대한민국 창조경제의 핵심 동력 중 하나다. 최근 해외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규제 또한 까다롭게 강화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 필요한 수출 전략은.

◇김용환=한국 창조경제의 원동력은 바로 수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경기 침체와 각국의 보호무역 강화 기조는 수출무역의 새로운 장벽으로 다가왔다. 어려울 때일수록 수출형 히든챔피언 기업 지원에 역점을 둬야 한다. 이와 함께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조선과 해운, 건설 등 취약 산업 또한 유동성을 해결해하는 조화로운 시장 안전판 역할을 정부와 금융권이 해야 한다.

성장 단계별로 맞춤형 지원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수출 초보기업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토양 마련이 급선무다. 특히 벤처기업을 포함해 설립 초기 수출기업이나 내수 위주에서 수출로 전환하려는 중소기업을 돕는 맞춤형 수출금융 지원 방안이 좀 더 강화돼야 한다. 수출입은행과 무역협회는 `수출 스타트업 프로그램과 연계해 해외시장·바이어 정보 제공을 시작했다. 또 대중소 동반성장 지원 프로그램인 상생 프로그램 지원 대상을 2차·3차 협력사로 확대하고 1조300억원 상생금융을 제공했다. 포페이팅과 수출팩토링을 통해 수출 완료 후 수출환어음과 수출채권을 무소구 조건으로 매입해 대금 회수 위험을 제거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부섭=맞춤형 수출금융 프로그램 방안과 함께 수출형 기업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의식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최근 창조경제 열풍이 불면서 각종 펀드와 자금 지원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이 자금을 자기돈으로 착각하는 사례가 많다. 아무리 자금이 풍부해도 엄밀히 말하면 이 돈은 회사자산이 아니다. 수출기업 중 상당수가 재무제표 부채비율이 턱없이 높은 것도 이 같은 인식 때문이다.

산업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수출이 창조경제의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초창기 수출형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때 어떻게 해야 하고 상황에 맞는 지원 대책이 시스템처럼 마련돼야 한다. 수출은 처음이 가장 힘들다. 수출무역을 통해 경험이 쌓이면 그 다음은 쉽다. 리스크 관리와 동반성장 프로그램 마련이 적절히 운용돼야 한다.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금지원과 해외진출 금융 노하우가 필수다. 이는 기업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정책금융기관과 일반 은행들이 창조산업의 수출 산업화를 위해 단계별 종합지원방안을 통합해 마련하고 각 단계별로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는 이음새 역할을 기대한다.

정리=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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