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역차별 우려" 논란
대기업들이 단가 후려치기, 부당 발주 취소 등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개정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의 사각지대를 벌써부터 악용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오는 10일 시행령까지 입법 예고하지만 대기업이 법 규제 망을 피하기 위해 중소기업과 거래를 배제하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대표 대기업은 중견·대기업 위주로 협력업체를 정리하고 중소 협력사를 소외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소재·부품·설비 등 구매 품목별로 다르지만, 대체로 매출액 1000억원 이하 중소기업이 배제 대상이다.
전자 수동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A사는 최근 대기업 S사의 협력사 승인 마지막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현재 이 부품 시장은 외국계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선행개발팀·구매팀의 승인심사를 모두 통과했지만 회사 규모가 문제가 됐다. 중소기업과 거래하면 하도급법 규제에 묶이는 탓에 최종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A사 대표는 “현실적으로 S사 입장에서는 외국계 대기업과 계속 거래하는 것이 편하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 “하지만 하도급법 개정 취지와 현실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도체업체 B사도 최근 대기업의 신규 제품 승인심사 과정에서 공급량 확대에 실패했다. 기존 제품 단가를 인하하는 조건으로 신제품 공급량을 늘리기로 했지만 막상 계약 과정에서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당 단가 인하 등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면하기 위해 구비해야 할 서류작업 때문에 신제품 제작 기한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신제품 공급 계약은 B사의 경쟁사인 외국계 기업이 따냈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은 “그동안은 게임의 룰 자체가 불공정했는데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며 “이 법을 이유로 기존 거래선까지 불이익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이 같은 행태를 비판했다.
하도급법 개정안은 지난 4월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법 1호로 통과돼 내년 2월 시행된다. 기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부당 단가 인하, 부당 발주 취소, 부당 반품 등으로 확대 적용했고 배상액도 `3배 이내`로 강화하는 등 불공정 거래 관행을 뿌리 뽑는다는 취지로 개정됐다. 10일 입법 예고하는 시행령은 하도급 대금 감액요청 시 감액요청 서면, 기술자료 제공 요구 시 요구서면 등의 보존 의무를 강화했다.
대기업 협력사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눈치를 본다고 하면서 오히려 중소기업의 판로를 봉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입법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아예 중소기업과 거래를 끊는 등 편법으로 피해 나갈 방법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