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구인난, 구직난이 심각하다. 청년은 취직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대기업이나 중견·중소기업은 모두 원하는 인재채용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태백, 88만원세대 등 청년실업문제는 각종 우울한 신조어를 낳으며 사회 전반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이대로라면 세대갈등은 물론 산업 전반의 활기가 떨어지는 부작용마저 우려된다.
전자신문은 창간을 맞아 눈높이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대기업 인사담당자와 유력 중견기업 사장, 대학생 취업준비생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취업`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참석자(기업, 학생 가나다 순)
나기홍 삼성전자 DMC연구소 인사그룹 상무
이한조 유닉스전자 사장
이동곤 성균관대 사회학과
이아경 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
정성웅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사회=김승규 전자신문 전자산업부 차장
◇사회(김승규 전자신문 전자산업부 차장)=취업은 청년 성장과 사회 건전성 차원에서 중요하다. 일단 기업들의 인재상을 대기업, 중소기업에서 이야기 해달라.
◇나홍진 삼성전자 DMC연구소 인사그룹 상무=인재상을 말하려면 시장부터 이해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전자회사고 IT업계에 있다보니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시장상황이 예측 불가능하게 바뀌기 때문에 창의성, 전문성,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서 사고의 폭이 넓고 유연하면 좋겠다.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전문성과 글로벌 소통 능력이 있으면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
◇이한조 유닉스전자 사장=인재가 중요하기 때문에 직원들 면접은 100% 직접 진행한다. 지원자의 인성을 첫 번째로 보고, 전문성은 그 다음이다. 특히 솔선수범과 정직을 본다. 중소기업은 조직이 대기업만큼 전문화돼지 않아 일을 알아서 하는 면이 있다. 잘하지 못해도 스스로 하는 사람이 중소기업에 가장 필요한 인재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게 사회에서 실력은 아니다.
◇사회=취업준비생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과도한 스펙쌓기에 대한 지적도 있다. 자신과 주변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 해달라.
◇이아경 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토익은 물론 오픽같은 회화 공부도 따로 한다. 공모전에서 창의성도 인정받아야 하고, 해외봉사나 다양한 활동으로 열정도 보여야 한다. 기업의 인재상에 맞춰야 하니 이런저런 활동을 하게 되고, 보통 대학을 5년 반씩 다닌다. 중간에 1년에서 1년 반을 휴학도 한다.
◇정성웅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자연계열에서는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편이다. 오픽이나 토익은 문과 학생보다는 덜 준비한다. 리더십 등에서 차별화를 하거나 면접 때 전문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이동곤 성균관대 사회학과=개인적으로 청강문화산업대 졸업하고 성균관대 사회학과로 편입했다. 게임기획자를 목표로 실용적 지식만 배워서 스스로 경험이나 인식면에서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병역특례과정에서 생산직도 경험하면서 게임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과 사회에 대한 공부를 목표로 편입에 도전했다. 지금은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향후 게임 기획 일을 하게 되면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사회=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인재 선발 원칙이 좀 다를 것 같다.
◇나홍진=삼성전자의 인재상을 정리하자면 업무에 대한 열정, 올바른 가치관과 책임감, 프로정신과 도전정신을 본다. 지원자의 열정을 검증하는 것은 짧은 대면면접 과정에서는 어렵다. 지원자는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미래지향적인 것을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면접관은 지원자에게 살면서 미치도록 완성해보겠다, 달성해보겠다고 했던 일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과거에 무엇을 해왔는지를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는 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아아경=거짓말로 자신의 경력을 속이거나 하면 어떻게 가려내나.
◇나홍진=삼성의 인사정책은 의심가면 뽑지 않고, 뽑았으면 의심을 하지 않는다. 지원자도 나의 참모습과 색깔을 인정하는 조직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나. 맞지 않는 곳을 들어가면 문턱은 넘어도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입사하면 자신의 능력이 드러난다.
◇이한조=대기업은 여러 명의 면접관이 심층면접을 진행하면서 지원자의 열정이나 자질 등 면모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제가 직접 면접을 들어가는 것도 그런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에게는 한 번의 기회지만, 면접관은 수백번 수천번 같은 질문과 경험을 하기 때문에 말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감이란 게 온다. 얼마나 열정적이냐, 진실되느냐에 따라 감동을 줄 수 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만들어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회=공기업과 대기업 준비를 많이 하는데 취업 준비생의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이 궁금하다
◇정성웅=병역특례로 중소기업을 약 2년간 다니면서 금전적인 문제를 가장 크게 느꼈다. 취업한 동기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봉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중소기업 평균연봉 3000만원이란 인터넷 기사 댓글이 `내가 지금 몇 년을 다녔는데 이걸 못 받는다`라고 올라온다.
◇이한조=질문이 있다. 취업준비생은 대기업에 못 들어가서 그 시간을 어떻게 하는가.
◇이아경=대부분의 학생들이 졸업을 유예해 어학점수나 스펙을 쌓으면서 다음 공채를 노린다. 마치 수능을 재수하는 것과 같다.
◇이한조=취업에서 급여가 제일 중요한 문제인가, 혹시 다른 중요한 것은 없는지 궁금하다.
◇정성웅=회사의 규모가 작을수록 걱정이 된다. 만약 기업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사업이 없어지면 어떻게 먹고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없어지면 내 일자리도 없어질 것이란 걱정이 드는 것이다. 최근에는 돈을 많이 벌면 그것 자체로 명예가 되는 풍토도 있다. 대기업을 다니는 것 자체가 인정받는 셈이다.
◇이동곤=저도 병역특례로 중소기업에서 일을 해봤는데, 지역 하청업체였다. 대기업의 부품을 만드는 기업이었는데, 야근이나 근무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중소기업이란 인식 자체가 지원을 꺼리게 만드는 것 같다.
◇사회=단어 선택 문제인데, 중소기업이 아니라 벤처기업이란 말로 바꿔보면 인식이 달라진다. 중소기업에 도전하는 취업 지원자도 있지 않은가.
◇이동곤=급여 문제가 아니라면, 새로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중소기업을 가고 싶다. 하지만 아무 중소기업이나 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명확한 비전이나 환경을 구축한 곳이었으면 한다. 제니퍼소프트는 중소기업인데 대기업 못지않은 복지로 많은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사장님의 비전이 인상적이었다. 사원이 행복하면 좋은 회사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나홍진=우리나라도 IMF 이후로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평생직무`가 더 중요해졌다. 처음부터 연봉을 높이 두는 것보다 나중에라도 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대기업은 직무들이 세분화돼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기 힘들다. 작은 회사일수록 다양한 직무를 해볼 수 있다. 작은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나중에 훨씬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사원들의 대기업의 선호도가 높은 것도 처우 때문이라고 안다. 삼성이 일년에 최대 1만명을 뽑는데 대학 졸업생은 최대 40만명이다. 그 인력을 다 채용하려면 한국에 삼성같은 기업이 40개는 돼야한다. 누군가는 중소기업도 가야한다. 무조건 대기업을 목표로 정하는 것보다 자신과 잘 맞는 회사나 직무를 찾아야 한다.
◇이아경=일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여성의 출산휴가 등 복지제도를 대기업은 비교적 잘 지켜주는데, 중소기업은 여건 상 힘들다고 알고 있다.
◇이한조=중소기업이 더 배려를 잘 해줄 수도 있다. 중소기업은 오래 다닐 수 있는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 자체가 가장 중요한 정보고 자원이라 여성 인력들에게도 배려를 하고 기회를 제공한다. `언어의 도가니`에 갇힌 게 아닌가 싶다.
◇사회=기업 입장에서 구직자와 학교에 요구하는 것이 있을 듯하다. 현장형 교육을 늘려달라든지.
◇이한조=저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법을 깊이 공부했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검사로 일할 때는 세상은 원칙과 규율로만 가득 찬 것 같았고, 미국에서 MBA를 할 때는 기업은 숫자만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봤다. 막상 회사 경영을 맡고 보니 그것은 결과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기초이고, 지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과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회사일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해야한다. 친구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푼다던지, 리더가 되는 경험이나 조직을 융화시키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아경=최근 대학에서도 팀플레이가 많아졌다. 그룹과제에서 조원 다면 평가도 한다. 혼자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역할분담이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많이 시키는 편이다.
◇나홍진=소위 말하는 스펙관리와 학점은 사회적으로 큰 낭비다. 면접을 하다 보면 이공계 필수전공 이수학점이 너무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 분야는 대학에서 충분히 전공을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학점관리를 하기 위해서 어려운 과목은 기피하고 점수가 잘 나오는 교양과목을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삼성전자는 지원 자격기준을 3.0으로 보는데 3.2~3.7은 차이가 없다.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다는 최소한의 척도만 필요할 뿐이다. 동아리나 사회활동도 필요하다. 회사일은 정형화되지 않은 문제들을 빠른 시간 내에 연속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다. 경험에 기반한 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 입사준비는 됐는데, 실제 일을 시키면 진도가 안 나간다. 해외연수나 해외여행 등 다양한 국가의 사람과 사회계층을 만나는 것도 좋다. 취업을 대학 입시 제도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해를 많이 하지만, 적어도 삼성에서는 스펙을 그렇게 많이 보지 않는다.
◇정성웅=대학생들도 오버스펙이다, 인성을 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서류로 지원하는데, 어떻게 스펙을 안 보고 뽑는가.
◇나홍진=삼성직무적성검사(SSAT)와 면접 제도가 있다. 삼성은 다양한 인재를 뽑고 싶고, 서류 전형을 하지 않는다. 평균학점 3.0, 영어회화실력, 남성이라면 군대 여부까지 3가지 기본 자격만 통과하면 지원할 수 있다. SSAT로 종합적인 직무적성을 파악하고, 면접도 개인당 1시간 이상 하고 있다. 공채에 7만명이 지원하는데, 6만5000명이 SSAT를 본다. 삼성에서만 7000명 정도의 인원과 전국 60개 시험장을 운영한다. 많은 경비와 시간이 들지만, 기회를 주기 위해 한다.
◇정성웅=유닉스전자도 드라이기 등 소형가전 제품 브랜드로 잘 아는 기업이다. 취업 지원 상황이 궁금하다.
◇이한조=신입의 경우 제대로 된 지원자나 인재가 거의 없어 어렵다. 경력자는 오히려 지원풀이 넓다. 10년 전에는 오히려 좀 더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했었다. 대기업이 10년 전보다 더 커지면서 구인시장에서도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면이 있다. 이를 무조건 장애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인생은 길고, 중소기업도 장점이 있다.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다. 자기 사업을 할 경우 분업하된 업무만 경험한 대기업보다 다양한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중소기업에 있었던 것이 장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아실현이 교과서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도 검사도 하고 MBA도 다녀오고, 미용사 자격등도 땄다. 대기업 들어가는 게 자신의 꿈은 아니다. 열정이나 보람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한 가치다. 20년 뒤 미래를 생각해보면 올바른 상황을 만들도록 해야한다. 중소기업도 비전 수립이나 업무환경 개선 등 노력을 많이 한다.
◇정성웅=대기업 쏠림이 심화되면서 머리만 크고 몸은 작아진 시장환경이 문제라는 것을 공감한다. 대학등록금만 생각하면 학생 입장에서 당장의 연봉문제가 급해진다. 기업이나 지원자 어느 한 쪽만 노력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나홍진=과열됐던 교육열도 문제다. 대기업도 혼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협력과 동반성장방안을 고민한다. 브라질에 있는 연구소를 가볼 일이 있었는데, 기업발전 및 인재육성을 위한 다양한 연구개발 지원방안을 내놓더라. 취업기회가 꼭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동곤=기업문화도 갑을문화가 아니라 공생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임무를 완수해주면 불합리가 없어질 것 같다.
정리=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