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VAN) 리베이트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며 금융당국이 들고 나온 `밴 수수료 개편안`이 결국 용두사미로 전락했다. 밴사는 물론 카드사까지 KDI가 내놓은 수수료 개편안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예견된 일이다. 애초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말도 나온다. 용역 작업을 진행한 KDI가 수수료 선진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폐쇄적인 시스템을 고집하고, 귀를 닫았다는 정황이 흘러나온다.
밴 업계는 이번 수수료 개편안 도출 과정에서 근거가 될 수 있는 수수료 관련 자료들을 KDI에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밴사의 평균 매출, 원가분석 등 방대한 분석 자료를 근거로 해야 하지만 박사급 인력 몇 명이 책상머리에 앉아 개편안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카드업계도 비슷한 입장이다. 수천억 원의 돈이 오가는 수수료 개편안을 만들면서 업계 의견은 제대로 듣지 않고, KDI가 독자적으로 개편안을 만들고 통보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용역 분석 과정에서 업계 상황을 간과했다는 것은 이번 개편안이 얼마나 허술하게 만들어졌는지를 증명한다. 상황이 이러니 업계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분위기속에서도 밴 리베이트 요구는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KB국민카드에 이어 비씨카드와 밴 사간 수수료 정산 문제를 놓고 또 한차례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밴 업계는 은행계 카드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비씨카드가 다른 카드사에 비해 낮은 밴 수수료를 내면서도 올해 또 한 차례 수수료 인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은행계 카드사와 밴사 중간에서 비씨카드가 중간 역할을 하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밴업계는 비씨카드에게 밴 수수료 인상을 요청했지만, 비씨카드는 오히려 수수료를 낮춰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미 카드사와 밴사는 `밴 수수료 개편안`에 대해 기대를 저버렸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은 표가 나게 마련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별도 밴 수수료 TF를 구성해 합의를 봐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수십 년간 이어온 밴 리베이트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애꿎은 영세가맹점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