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프레드릭 테일러에 영감을 받아 창업해 지금까지 2000만달러 로열티를 올린 기업이 있다. 10명 남짓 직원이 일하는 테일러테크놀러지가 그 주인공이다.
테일러테크놀러지에는 대표이사실이 없다. 사무실 한 쪽 구석에 자리한 책상 하나가 김명구 대표의 공간이다. 김 대표는 그 책상마저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사무실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스스로를 `사장이 아니라 영업사원`이라고 표현한다. 사업기획과 영업이 회사에서 그가 맡은 역할이다.
테일러테크놀러지는 2003년 MP3플레이어에 가사를 지원하는 솔루션으로 창업했다. 당시 MP3하드웨어 제조사 바롬테크의 대리였던 김명구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워낙 어릴 때부터 장사에 소질이 있던 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6살 때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반찬 가게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팔았고, 초등학교 때는 물물교환 시간에 버려진 반짝이 옷을 이용해 만든 목걸이를 친구들에게 판매할 정도였다.
돈 버는 일이 재미있었던 그는 대학도 “앞으로 돈이 모이는 곳은 전자업계”라는 생각으로 공대를 선택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던 1990년대 당시는 삼성과 LG 등 대기업들이 전자산업에서 막 덩치를 부풀리던 시기였다.
김 대표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1998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바롬테크에 입사했다. MP3플레이어의 구조를 설계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그의 일이였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돋보기를 끼고 조그마한 MP3P를 들여다보던 선배의 모습에서 20년 후의 자신을 발견했다. 대기업에서 이름을 날리던 선배였다.
가치 있는 일이었지만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대표에게 직접 요청해 상품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긴 후 비로소 전공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3년에는 직접 아이디어를 낸 실시간 가사 서비스 시스템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노래 진행에 따라 노래방처럼 가사를 LCD 창에 흘려보내 표시하는 기술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 MP3플레이어 제조업체가 100군데나 등장할 정도로 시장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었다.
회사를 그만 둔 그는 오피스텔을 구하고 지인을 모아 몇 개월에 걸쳐 머리속 아이디어를 `LDB(lyrics Data Base)`라는 기술로 실현했다. 퇴직금 700만원이 밑천의 전부였다.
“더 이상 하드웨어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기술로 차별화를 하지 않으면 끝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MP3플레이어 업계 1위는 아이리버였다. 만년 2위를 면치 못하는 삼성전자가 테일러테크놀러지의 LDB 기술에 주목했다.
삼성전자는 MP3플레이어 `옙(yepp)`에 LDB 시스템을 묶어 출시했다. `실시간으로 가사가 보이는 MP3`라는 점을 강조한 이 모델은 출시 하루 만에 홈쇼핑 등에서 기존 물량의 두 배를 팔아치우며 돌풍을 일으켰다.
개당 로열티를 맺었기 때문에 MP3플레이어가 팔리는 족족 테일러의 매출도 덩달아 올라갔다.
승승장구 하던 실적은 2000년대 후반부터 하향세로 돌아섰다. 아이팟이 등장하고 곧이어 스마트폰 열풍이 불며 MP3 시장이 사양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가장 큰 협력사인 삼성전자는 모바일 운영체계(OS) 등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동적으로 LDB 관련 비즈니스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김명구 대표는 시선을 돌려 스마트폰 액세서리 사업을 시작했다. 머그컵 형 스마트폰케이스, 집게형 거치대, 스마트패드 거치대 등 독특한 제품들이 인기를 얻었다.
어릴 때 목걸이를 만들어 팔던 김 대표의 감각에 전문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으며 탄생한 제품들은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안팎으로 인정을 받았다.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테일러테크놀러지는 다시 본연의 영역이었던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진한다. 미디(MIDI, 디지털 음원 정보 데이터 전송 규격)파일로 각종 효과를 입혀 음악을 창작 할 수 있는 `엉클팝`을 올해 출시할 계획이다.
애플의 음악 애플리케이션인 `개러지 밴드`에 필적할만한 앱을 출시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웠다.
엉클 팝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작곡이 가능하다. 개러지 밴드가 드럼, 기타, 건반 등을 조합하는 수준이었다면 엉클 팝은 흥얼거리는 소리만으로 훌륭한 노래 한곡을 완성 할 수 있다. 멜로디와 비트를 손으로 그릴 수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손으로 오선지에 음의 높낮이를 표현하면 악보가 자동으로 그려진다. 여기에 손가락을 두드리면 비트가 입력된다. 보다 전문적인 편곡이 필요하다면 기타, 드럼, 건반 등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 각각 효과를 동일한 방식으로 설정해 멜로디에 입힐 수 있다.
김 대표는 `보이는 음악`이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엉클 팝을 대표적인 음악 창작 플랫폼으로 키워가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를 위해 글로벌 음원관리 업체와 계약도 맺고 차근차근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노래가사 디스플레이 기술로 시작해 음악 창작까지 시도하는 셈”이라며 “디지털 음악시장이 아직 게임 등 다른 콘텐츠에 비해 저평가 받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테일러테크놀러지는 매출 50%를 연구개발(R&D)에 재투자 한다. 김 대표는 “매출 대비 투자의 규모가 크지만 이는 곧 자신감의 크기와 확신을 의미한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은 한 번의 실패가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투자가 가능할 때 확신을 가지고 사업 아이템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 절실함이 결국 좋은 품질의 제품과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밑거름이죠.”
김 대표는 “실패보다는 어느 순간 도전이 멈출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소수구성원으로 10년을 헤쳐 온 그는 여전히 온 몸으로 열정을 실천하는 중이다.
“여섯 살 어머니 반찬가게에서 처음 물건을 팔던 순간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제품을 남에게 판매할 때 가장 희열을 느낍니다. LDB와 스마트폰 액세서리가 테일러테크놀러지의 시작이었다면 엉클팝은 그 뒤를 이어갈 빅 아이템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세계를 무대로 테일러의 열정을 전파하겠습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