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산요 삼킨 하이얼이 두려운 이유

내수 시장 벗어나 해외 시장 공략 박차

“당신들은 파나소닉에서 버림 받았어. 아직도 그걸 모르나? 죽을 각오로 일해야 해.”

니혼게이자이가 최근 전한 오쿠 준이치로 하이얼 일본법인 부사장의 발언이다.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일본인의 애환을 그린 짧은 인터뷰지만 한·중·일 3국에서 앞으로 벌어질 가전 산업 역학관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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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 부사장은 일본인 직원에게 인신공격에 가까운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강도 높은 긴장을 주문했다. 오쿠 부사장이 특히 화를 낸 대상은 산요 출신 인력이다. 지난해 초 파나소닉이 자회사 산요의 백색가전 사업을 하이얼에 매각했다. 일본 대기업이 중국에 팔린 첫 사례로 큰 화제가 됐다. 그때 많은 산요 직원이 하이얼로 둥지를 옮겼다.

오쿠 부사장도 산요 출신이다. 올해 예순 둘인 그는 세탁기 개발 외길을 40년 동안 걸어왔다. 2010년 정년퇴직하자 하이얼 일본법인장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일본 회사도 아닌 중국 경쟁사로 이직이 망설여졌지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하이얼이 반가웠다.

오쿠 부사장은 일본인 엔지니어를 더욱 혹독하게 대한다. “여기가 산요인 줄 아나”라는 질책은 입버릇이 됐다. 그가 마음에도 없는 가시 돋친 말을 뱉는 이유는 생각보다 하이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결과와 이윤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중국 기업 문화는 오쿠 부사장처럼 일본인 엔지니어의 노하우를 120% 발휘하게 만든다.

파나소닉 등 5년여에 걸쳐 실적 부진에 시달려온 일본 전자 업체는 비용 절감 때문에 지난해 초부터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정리해고와 조기퇴직으로 수많은 가전 전문가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하이얼이 이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숙련된 엔지니어를 활용해 세계 시장에서 손색없는 제품을 만들어내려는 전략이다. 중저가 제품 일변도에서 벗어나 프리미엄 시장까지 진출하겠다는 청사진이다.

그 전진기지가 하이얼 연구개발센터다. 지난 3월 군마현에 냉장고, 교토에 세탁기 센터를 세웠다. 여기서 개발하는 제품은 일본 시장에 내놓을 가전이 아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6개국을 겨냥했다. 일본의 기술과 브랜드에 중국의 대량 생산과 가격 경쟁력을 접목시킨 현장이다.

하이얼은 일본 기술을 최대한 살리려고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개발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단일 거점의 한정된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 문호를 개방해 다른 기업과 협력해 성과를 내는 구조다. 세탁기개발센터는 일본 기술력의 상징인 교토 지역 중소 전자 부품 업체와 끈끈한 협력 관계를 맺었다. 개발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의 해결책을 함께 연구하고 성과를 공유한다. 현재 25개 중소기업이 참가한다.

하이얼은 산요뿐 아니라 다양한 일본 전자 기업 출신 인력을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오픈 이노베이션의 일환이다. 서로 다른 개발 경험을 잘 융합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낸다고 믿는다. 일본 전자 기업의 구조조정이 하이얼 입장에서는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인 셈이다.

하이얼은 명실상부한 세계 백색가전 선두주자다. 세탁기는 지난해 월풀을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거대한 내수 시장 덕분이지만 해외 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혀간다. 하이얼은 아직 브랜드가 약하다. 프리미엄 제품 개발력도 아직은 2% 부족하다. 산요를 삼킨 뒤 하이얼의 행보를 보면 약점은 곧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 점점 하이얼이 두려워진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