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정확한 검증 없이 무차별적으로 특허를 출원하면서 저품질 특허를 양산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성과 위주 출원에서 벗어나 양질의 특허를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요 대학에 따르면 특허 사업화를 담당하는 `기술 이전 전담 조직(TLO)`이 교수가 제출하는 발명 신고서를 무차별적으로 특허로 출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발명신고서는 특허 출원에 앞서 교수가 제출하는 일종의 사전 특허 신청서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2년∼2012년) 대학 특허 다출원 순위는 KAIST(9029건), 연세대(4164건), 고려대(4007건) 순이다. 주요 대학 TLO가 선행 기술 조사 등을 통해 보완 요구 등 거절하는 비율은 10%가 안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수 발명이 이뤄지면 대부분 특허 출원으로 이뤄진다는 의미다.
KAIST는 연간 1000여건 특허를 출원해 국내 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특허를 낸다. 지난해까지 교수 발명 신고서가 접수되면 거의 100% 출원이 이뤄졌다. 올해 3월 특허 출원 심사를 강화해 권리범위 보완 등 출원 거절 건수가 있지만 여전히 출원율이 90% 이상이다. 특허 출원이 많은 다른 대학도 약 95% 출원율을 보였다. KAIST TLO 관계자는 “출원량이 많다고 경쟁력 있는 특허를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며 “특허 가치를 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안 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허 출원이 많으면 좋지만 특허성이 없는 특허도 대량 생산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결과 대학 특허 휴면율은 70%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KAIST 보유 특허 중 65.6%가 휴면 특허다.
무분별한 특허 출원이 높은 특허 무효화율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IP서비스업체 대표는 “출원된 특허는 많지만 기술 이전 등 활용 가치가 높은 특허를 찾기는 쉽지 않다”며 “만약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권리가 소멸될 수 있어 기술 사업화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특허 양적 증가에 신경 쓰는 이유는 교수 업적이나 연구 성과 평가 항목으로 특허 출원 건수가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교수들은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기술 내용보다는 특허 출원 건수가 많아야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 국가연구개발(R&D) 사업 과제를 수행할 때 특허 출원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며 “교수 성과를 고려해 특허 출원을 쉽게 거절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활용가치가 높은 특허를 분별하는 시스템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외 대학에서는 양적 출원보다 특허 품질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도쿄대 TLO인 토다이 TLO에서는 발명 신고서가 접수되면 절반가량은 출원을 거절한다. 타카후미 야마모토 토다이 TLO 대표는 “TLO 분석 결과 시장성이나 특허성이 없으면 국가R&D 사업과제로 접수한 발명이라도 거절한다”며 “교수 사정을 봐줘 가치 없는 특허 출원을 허락하면 계속 저품질 특허를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기술이전 전문가는 “미국 MIT에서도 발명 신고 접수 대비 특허 출원 비중을 따지면 우리보다 훨씬 낮다”며 “국내 대학에서는 특허 출원 거절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대학 기술이전전담조직(TLO)=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보유한 기술을 특허화해 기업에 판매하거나 라이선스를 주는 기관. 산학협력의 한 방법으로 대학 기술 상업화 기능을 한다. 교수 연구 성과로 나온 기술을 발명 신고서로 제출받아 발명 검토·평가 후 전담 특허사무소 등과 연계해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고 특허 출원하는 등 관리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국내 대학 특허 출원 현황(단위 : 건)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