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방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의 T-50 고등 훈련기 등 고도의 정밀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했다. 이제는 당당히 방산무기 수출국 반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개발한 일부 무기에 결함이 발생해 전력화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문제 발생에는 사용자 요구사항 분석 및 관리 미흡, 개발경험 및 기술 부족, 불충분한 개발기간, 비용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비단 무기개발 분야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전자산업 등 일상의 모든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동안 무기개발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연구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 요구사항 분석과 관리인데 가장 잘 되지 않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사용자 요구사항을 명확히 정의하고 개발하는 것이 연구개발의 기본 원칙인데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IT 프로젝트 실패요인을 분석한 미국 스탠디시 그룹(Standish Group) 보고서에 따르면 불완전한 요구사항(13.1%), 사용자 참여 부족(12.4%), 비현실적 기대(9.9%), 요구사항 변경(8.7%), 불필요한 요구(7.5%) 등 약 52%가 사용자 요구사항과 관련된 것이다.
개략적인 요구사항만으로 개발을 착수한 후 문제가 있으면 변경하고, 수시로 요구사항을 추가하면서 고치고, 고치다 보니 비용과 기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개발업체는 납기를 맞춰야 하는 부담 때문에 시간에 쫓겨 개발을 할 수밖에 없고 결국 품질불량으로 이어졌다. 당연한 결과다.
소프트웨어(SW) 결함 처리비용 분석자료에 의하면 요구분석 단계에서는 1이면 되는 처리비용을 설계-개발-시험을 거쳐 마지막 운용단계에서 처리하려면 40~100의 비용이 든다. 그 만큼 초기단계인 사용자 요구사항 분석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제는 종전의 연구개발 방식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방위사업청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통적인 연구개발 패러다임을 바꿔 사업 착수 이전에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명확히 정의한 운용요구서(ORD)를 작성해 제안요청서에 포함, 공고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런데 ORD를 개발 이전에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작성하는지다. 사용자로부터 요구사항을 상세히 도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ORD는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 상세하고 명확하게 작성하도록 했다.
이번 ORD 작성제도 도입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첫째, 명확한 요구사항에 의한 연구개발을 추진함으로써 개발 기간 중 잦은 요구사항 변경에 따른 사업지연과 비용증가를 방지하고 품질이 우수한 무기를 적기에 개발이 가능하다.
둘째, 개발업체는 제안요청서에 상세히 명시된 요구사항을 기준으로 명확한 개발범위와 비용, 일정 등을 검토한 후 사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셋째, 국산 무기체계의 품질향상에 따른 신뢰도가 증가해 수출경쟁력이 향상되고 국가 산업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수십 년간 군에서 무기를 운용했거나, 개발경험이 있는 전문인력으로 ORD를 작성하게 함으로써 효율적인 인적자원 활용은 물론이고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제는 무조건 `시작이 반`이 아니라, `잘 시작해야 반`이라는 생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용자 요구사항을 미리 상세히 작성한 후 개발하도록 함으로써 국산 무기의 품질 향상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국산 명품무기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성남 방위사업청 획득기반과장(공군대령) dapalee@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