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나라 지도는 위로 압록강과 백두산, 두만강이 있다. 아래로는 백두대간을 따라 소백산에서 남해안, 제주도로 이어진다. 이 지도를 거꾸로 보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위로 동해와 남해, 서해가 넓게 펼쳐진다. 우리 영해 위에 대양의 전진기지처럼 제주도와 독도, 울릉도가 자리잡고 있다.
보는 시각과 각도에 따라 사물이나 사건을 대하는 입장이 다르다는 얘기다. 관점의 변화는 처한 환경을 새롭게 만든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반도라는 지리적 환경 탓에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침을 겪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륙과 해양 문물을 다양하게 접하며 문화를 꽃피운 배경이 됐다.
경제 민주화라는 화두 속에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을 재벌과 같은 부류로 놓고 문어발식 확장에 뭇매를 가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 재벌의 선단 구조, 대기업의 수출 견인은 필수적이라는 옹호론도 나온다.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중소기업은 오래 전부터 갑을관계에서 을이고, 산업계의 약자였다. 지원하고 육성해야할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를 보면 꼭대기 정점에 대기업이 있다. 그 아래에 중견기업 및 1차 벤더, 다시 그 밑으로 수많은 2, 3차 벤더를 포함한 중소기업이 자리한다. 이 구조를 거꾸로 돌려보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마치 잎이 우거진 나무처럼 맨 위에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있고, 중간에 중견·강소기업이 줄기처럼 내려와 맨 아래 뿌리 같은 대기업으로 이어진다. 이 나무처럼 대기업은 뿌리, 중견기업은 굵은 줄기, 중소기업은 꽃과 과일을 맺는 가느다란 가지다.
생각을 바꿔보자. 산업 지원을 통해 꽃과 열매를 맺는 주역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 말이다. 이젠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을 끊임없이 지원 육성의 대상으로만 보고, 대기업의 과실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고정된 틀에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이 만들어졌다. 중소기업 정책이 아닌 큰 틀에서의 보다 근본적인 산업의 정책이 바뀌어야 아름다운 꽃과 맛있는 열매를 맺는 중소기업이 나오는 법이다.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